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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카슈끄지 시신 버릴 숲까지 물색 … 살해 감추려 대역 동원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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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내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왼쪽)과 그의 암살을 숨기기 위해 카슈끄지처럼 수염을 기르고 똑같이 옷과 안경을 착용한 대역이 영사관에서 걸어나오는 모습. [CNN 캡처]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내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왼쪽)과 그의 암살을 숨기기 위해 카슈끄지처럼 수염을 기르고 똑같이 옷과 안경을 착용한 대역이 영사관에서 걸어나오는 모습. [CNN 캡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지난 2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숨진 사건을 “미리 정교하게 계획된 정치적 살인”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스탄불 근처의 숲에서 사우디 관리들이 카슈끄지의 시신을 버릴 장소를 미리 물색했다고 밝히면서도 살해 당시 정황이 담긴 음성 파일이나 영상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에르도안 “2개팀 파견, 계획살인” #용의자들 터키에서 재판 요구도 #빈 살만 왕세자 이름은 거론 안 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지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카슈끄지 살해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들이 터키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에르도안이 패를 다 까지 않은 채 국제적인 조사를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이 조사 결과와 빈 살만을 보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응 등에 따라 중동의 역학 구도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에드로안 대통령은 23일 앙카라에서 열린 정의개발당(AKP) 의원총회에서 “사우디 두 개 팀이 카슈끄지 살해에 관련돼 있고, 살인을 실행한 팀은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을 방문할 것임을 미리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 관리 세 명으로 구성된 팀이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 들어가기 하루 전 이스탄불 인근 숲인 얄로바 지역을 미리 둘러봤다”고 밝혔다. 사우디 요원들이 카슈끄지 살해 후 시신을 처리할 장소를 물색했다는 의미라고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영사관에서 나온 대역(원 안)은 잠시 후 공중화장실로 들어가 카슈끄지의 옷을 벗고 원래 자기가 입었던 옷(파란색)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CNN 캡처]

영사관에서 나온 대역(원 안)은 잠시 후 공중화장실로 들어가 카슈끄지의 옷을 벗고 원래 자기가 입었던 옷(파란색)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CNN 캡처]

에르도안은 “터키 보안 당국은 이 살인이 계획된 것임을 증명할 증거를 갖고 있다”며 “살해 계획을 세운 자와 가해자가 책임을 져야 터키와 전 세계가 만족할 것이므로 다른 나라들도 조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우디 살만 왕의 진실함을 의심하지 않지만 정치적 살인이므로 독립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총영사관은 터키 영토에 있고, (이번 살해와 관련해) 제네바 협약이 외교적 면책을 제공하지 않는다”고도 못 박았다. 에르도안이 빈 살만 왕세자가 결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터키가 범죄 수사를 하려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카슈끄지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서 사우디가 카슈끄지의 행방과 관련해 거짓말을 하고, 터키 당국의 조사를 즉각 수용하지 않은 데다 카슈끄지와 닮은 사람을 고용해 속이려 한 점 등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압박했다.

로이터 통신은 사우디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사건 당일 빈 살만 왕세자의 고문인 사우드 알카흐타니가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총영사관에 있던 카슈끄지에게 욕설을 퍼부은 뒤 “그 개XX의 머리를 가져오라”며 파견 조에 살해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카흐타니는 빈 살만의 최측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나 해스펠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터키로 급파했다. 중동에서 사우디와 대립해 온 에르도안이 결정적 증거의 공개 수위를 조절하면서 미국 등과 협상을 하려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날 개막한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회의에서 연설하려다 취소했다.

미 국무부 전범 문제 특사를 지낸 스티븐 램은 워싱턴포스트에 “보도가 정확하다면 카슈끄지에 대한 행위는 국제인권법 위반”이라며 혐의가 확인될 경우 왕세자를 포함한 가해자들이 전 세계 민간·형사 법정에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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