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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의 재탄생...원자 재배열 기술로 그래핀도 다시 태어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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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물질의 기본 단위가 원자라면, 제조 산업의 기본 단위는 ‘소재’다. 다양한 물질의 특성을 살려 응용하는 신소재 개발에 과학계ㆍ산업계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다. 지난 2010년 노벨물리학상 역시 소재 연구를 통해 꿈의 물질로 불리는 그래핀을 만들어낸 안드레 가임ㆍ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래핀이 반도체의 주 소재인 실리콘에 비해서도 100배 이상 전자 이동성이 빨라 응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원자 한 방향으로 정렬된 ‘단결정’ #38원 일반 구리, 18만원 신소재로

신소재 사업은 제조 산업의 기본 단위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한층으로 연결된 얇은 구조의 신소재로 전자가 이동하는 속도가 실리콘에 비해 100배 이상 빠른 특성을 지닌다. [중앙포토]

신소재 사업은 제조 산업의 기본 단위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한층으로 연결된 얇은 구조의 신소재로 전자가 이동하는 속도가 실리콘에 비해 100배 이상 빠른 특성을 지닌다. [중앙포토]

그런데 그래핀과 같은 금속도 그 성능을 더욱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다. 바로 소재의 원자 배열을 한 방향으로 정렬해, '단결정' 금속으로 만드는 것이다. 국내 연구진이 이런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18일,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 재료 연구단 로드니 루오프 단장 연구팀이 기존 상용화돼 있는 금속 포일에서 고부가가치의 단결정 금속 포일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신형준 울산과기원 교수ㆍ유원종 성균관대 교수가 공동으로 참여한 이 연구는 19일 국제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18만원 단결정 구리 포일, 38원짜리 다결정 소재로 제조 가능해져

비접촉 열처리에 따른 구리 금속 포일의 조직 변화 초기 결정립(보라색)에서 표면에너지가 낮은 결정립(파란색)이 나타나며, 이는 주변 다른 결정립들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며 크게 성장한다. 최종적으로 포일 전체가 하나의 결정립으로 이뤄진 단결정 상태가 된다. [자료제공=기초과학연구원]

비접촉 열처리에 따른 구리 금속 포일의 조직 변화 초기 결정립(보라색)에서 표면에너지가 낮은 결정립(파란색)이 나타나며, 이는 주변 다른 결정립들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며 크게 성장한다. 최종적으로 포일 전체가 하나의 결정립으로 이뤄진 단결정 상태가 된다. [자료제공=기초과학연구원]

단결정은 원자가 한 방향으로 배열돼 있다는 의미다. 단결정 금속 포일은 다결정 포일보다 표면이 균일하고 전기전도도가 우수한 장점이 있지만, 제조비용이 비싸고 큰 면적으로 제작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일반적인 구리 포일의 가격은 1㎠당 38원 수준이지만 단결정 구리는 동일 면적이 18만원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무접촉 열처리(contact-free annealing)’라는 새로운 제조 기술을 개발해 기존보다 1000분의 1 낮은 비용으로 최대 32㎠의 단결정 금속 포일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신형준 교수는 “다결정 금속 포일을 공중에 매단 상태에서 고온의 열을 가하면 물질 표면의 에너지가 낮아져, 마치 비누 거품이 서로 합쳐지는 것처럼 원자들의 경계가 없어지고 배열이 일정해진다”며 “공정이 간단해 제조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그만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 산업화에 유리해졌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관찰한 단결정 금속 포일 제조 과정 무접촉 열처리를 통한 단결정 금속 포일 제조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관찰한 모습. 상대적으로 불규칙적인 배열을 갖던 격자(맨 왼쪽)는 무접촉 열처리 과정에서 점차 규칙적으로 변하며 표면에너지를 낮춘다(맨 오른쪽). [자료제공=기초과학연구원]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관찰한 단결정 금속 포일 제조 과정 무접촉 열처리를 통한 단결정 금속 포일 제조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관찰한 모습. 상대적으로 불규칙적인 배열을 갖던 격자(맨 왼쪽)는 무접촉 열처리 과정에서 점차 규칙적으로 변하며 표면에너지를 낮춘다(맨 오른쪽). [자료제공=기초과학연구원]

기존 소재 개선한 단결정 금속...다른 신소재 만드는 '주물'로도 사용 

성능 역시 개선됐다. 실제로 연구진이 단결정 구리를 제작해 본 결과, 기존보다 전류가 7% 더 잘 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미래의 신소재로 주목받는 그래핀과 더불어 코발트ㆍ백금ㆍ팔라듐 등 다양한 금속 역시 단결정으로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대폭 절감한 비용으로 단결정 금속의 상용화뿐 아니라 차세대 전자소재용 개발에도 한 발 더 다가섰다는 평가다.

이렇게 제작된 단결정 금속 그 자체가 신소재이기도 하지만, 다른 금속을 성장시키는 ‘주물(틀)’ 역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진은 단결정 구리-니켈 합금 포일로 기판을 만들어 그 안에서 단결정 그래핀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두께가 극히 작아 ‘2차원 소재’로 불리는 차세대 고품질 제조 소재를 만들어 내는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로드니 루오프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장(UNIST 특훈교수). [사진 UNIST]

로드니 루오프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장(UNIST 특훈교수). [사진 UNIST]

연구를 진행한 로드니 루오프 단장은 “다양한 금속을 손쉽게 단결정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며 “실리콘 단결정 성장 기술이 현재 반도체의 역사를 연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 응용돼 세상을 바꿔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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