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세문제 해결의 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농민들의 수세 거부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서는 농민들의 부담을 덜어 주는 방향에서 문제를 풀어보려하고 있다. 농민들이 정부의 방침을 받아들여 이제 수세 거부운동이 진정될지 의문이다.
농민들의 요구는 두 가지가 큰 대목이다. 하나는 수세를 전액 국고에서 부담하고, 또 하나는 농지개량조합을 해체하고 국가기관으로 수리 청을 신설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같은 농민들의 요구에 대해 김 식 농림수산부장관은 최근 수세는 당초 방침대로 징수하는 대신 농 개조의 기구축소 등 비용절감을 통해 장기적으로 농민들의 부담을 덜어 주고, 수리 청 신설은 어렵다는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 천명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집단시위로 치닫는 수세 거부운동은 잠잠해질 것 같지 않다.
수세란 농지개량조합비로서 농민들이 농사에 쓰는 물 값을 말한다.
사리를 따지자면 저수지·관개시설 등 수리시설을 유지·관리하는 비용을 농업용수의 혜택을 받는 80만 농가가 부담하는 것은 원칙에 맞는다.
수리시설을 관리·운용하는 이 비용을 한푼도 안 거둘 경우 수리시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문제고,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나온다.
공장용수를 공동 개발하여 이를 유지·관리하기 위해 조합을 만들고 그 비용을 징수할 때 누가 부담해야 되는지 해답은 자명하다.
또 상수도요금을 소비자가 내고 있는 것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이같은 원칙론을 한발 짝 떠나서 생각하면 수세문제는 전기료나 상수도 요금과 조금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농산물의 시장개방이 불가피한 마당에 농촌경제의 부양을 위한 장기적인 시책을 촉구한바 있었다. 또 그 동안의 경제개발정책이 상대적으로 농업부문을 외면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 필요성이 있다.
이용자 부담, 수익자 부담원칙에서 수세문제를 떼어 고려할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정부도 그런 점을 고려해 농민부담을 경감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3백 평당 1백23㎏에서 올해는 10㎏으로 수세를 대폭 깎아 주었고 지난해 8백10억 원 걷힌 수세가 올해는 3백50억 원으로 징수목표가 낮추어졌다.
정부의 이같은 수세 경감조치가 농민들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만족해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것은 단계적 종국적 시책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세를 경감하더라도 단순경감보다는 영농규모나 농가 소득수준에 따라 면세점을 정하고 몇년 후에는 수세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장기적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농의 수세 면제는 별도의 농지세 차등 과세방법 등을 동원하면 될 것이다.
수리 청 신설의 문제는 수세 문제의 단계적 해결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수리 청이라는 새로운 정부기구의 신설은 결국 국민부담의 증가를 가져온다. 따라서 수세를 전면폐지하기 까지 농 개조라는 기구는 불가피하다. 당장 농 개조를 없애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보며 일본·대만도 농 개조로 잘 해 가고 있다. 그보다는 우선 농 개조의 방만한 기구축소와 경비절감 등 운영개선을 통한 경영합리화가 바람직하다.
고추수매·수세문제 등 요즈음 조용한 날이 없는 농촌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평화스런 농촌이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