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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프란치스코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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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오는 22일은 성인(聖人)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의 축일이다. 제264대 교황 바오로 2세는 20~21세기 역대 교황 가운데 세계인들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 및 독일계가 아닌 첫 슬라브계 교황으로 27년 재임 기간 세계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종교 간 화해와 동유럽 공산권 몰락에 지대한 공헌을 한 ‘하느님의 육상선수’였다.

1979년 6월 바오로 2세는 조국 폴란드를 찾았다. 즉위 이듬해였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상처투성이가 된 폴란드는 공산정권의 억압 아래 있었다. 그는 수백만 군중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위해, 미래를 위해 현재의 투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Solidarity)’가 세를 모았고, 그 기운은 동유럽 전체의 공산권 몰락과 민주화로 이어졌다.

“바오로 2세가 아니었어도 공산주의는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교황이 없었다면 한 세대는 더 갔을 것이다.” 브로니슬라프 게메레크 전 폴란드 외교장관의 말이다. 바오로 2세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유 폴란드’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984년 5월 3일 비행기 트랩에서 내린 바오로 2세는 ‘순교자의 땅’에 엎드려 입을 맞췄다. 한국 가톨릭 200주년 기념식과 김대건 신부 등 103인의 시성식을 계기로 방한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극진한 예우를 받은 교황은 다음날 광주 무등산경기장을 찾아 ‘여러분의 참극과 상처를 잘 안다’고 위로했다. 부산 등에선 노동자들의 정당한 임금을 얘기했고, 장충체육관 미사에선 민주화운동을 하다 옥살이를 한 청년이 수감 중 양말을 풀어 엮은 십자가와 학생들이 건넨 최루탄 상자를 기꺼이 선물로 받았다.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위로하고 축복했다. 교황은 한국의 발전상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닌 소외된 곳을 가고 싶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한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추기경이었던 프란치스코는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다. 예수회 수도자로, 교황청 내부의 개혁도 주저하지 않는다. 1976~83년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엔 핍박받는 이들을 구했다.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란 말이 있을 정도였던 북한 땅에 지금 ‘숨쉬는’ 종교는 없다. 교황은 김정은의 초청을 수락할 것인가. 가서 북한의 ‘소록도’를 보고 싶다고 할까.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부디 한반도에 참된 빛과 평화를 던져주길 바란다.

김수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