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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뱅크시 당했다” 과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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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호 35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그건 분명 ‘미술시장 엿먹어라’의 메시지를 날리는 뱅크시의 첨단 행위예술이었다. 어? 그런데 “뱅크시 당했다(Banksy-ed)”던 경매사 소더비는 지금 신이 났다.

‘얼굴 없는 거리예술가’ 뱅크시의 그림이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약 15억원에 낙찰되자마자 자동으로 갈려져 버린 것은 1주일 전이었다. 다음날 뱅크시는 인스타그램에 동영상을 올려서, 몇 년 전 그림 액자에 파쇄 장치를 숨겨놨었다고 밝혔다. 뱅크시가 경매장에 입찰자들과 섞여 앉아 원격조종으로 파쇄기를 작동시킨 것 같다고 외신들은 보고 있다. 소더비와 ‘짜고 친 고스톱 아니냐’는 설도 제기됐지만 정황상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한다.

그러니 이건 한 편의 드라마틱한 영화 아닌가. 그런데, 현대미술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바로 그 ‘영화 같은 스펙터클’ 때문에 뱅크시 사건에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스펙터클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중요한 요소이며, 이 멋들어진 퍼포먼스가 오히려 저 파쇄된 작품의 값을 더 올려줄 것임을 알기에 말이다. 이제 절반이 갈려져 액자에 매달린 그림은 독특한 조형미에 새로운 ‘역사’까지 얹지 않았는가.

뱅크시 ‘소녀와 풍선’ 파쇄 전후 [사진: 소더비 인스타그램]

뱅크시 ‘소녀와 풍선’ 파쇄 전후 [사진: 소더비 인스타그램]

아니나 다를까, 지난 목요일 소더비는 낙찰자가 파쇄된 뱅크시 그림을 그대로 구입하기로 했다고 (신나는 어조로) 밝혔다. 특별 전시까지 한다고 한다. ‘미술시장 엿먹어라’를 제대로 하려면 그림이 형체도 안 남게 폭발시켰어야 하지 않을까? 뱅크시의 지난 행보를 봐서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는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창의력 넘치는 거리 벽화를 아무 보상 없이 여기저기에 남기고 사라지는 작업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벽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벽화 소유권을 두고 다투는 사람들을 보고 불편한 심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나온 것이 이번 퍼포먼스지만, 결국 시장의 미소로 끝났다. 이것을 예측한 미국 주간지 뉴요커의 앤드리아 스콧 에디터는 뱅크시의 자동파괴 작품이 “공허한 제스처”에 불과하며, “예술이 한낱 가격표로 쪼그라드는 걸 조롱하는 게 의도였다면 그 조롱은 뱅크시 자신에게도 해당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조너선 존스 평론가는 결국 시장에 흡수되더라도 “예술가들을 시장에 길들이려는 그 손을 물어뜯는 시도는 중요하다”며 “뱅크시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여러분은 누구의 말이 옳다고 보시는지?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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