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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매니페스토 선거법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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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두 달 전인 3월 16일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한화갑 민주당 대표,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신국환 국민중심당 공동대표가 국회에 모였다. 화려한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5당 대표들은 "좋은 정책을 만들어 유권자들이 이를 따져볼 수 있도록 하는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장밋빛 공약(空約)'이 아닌 목적.우선순위.절차.기간.재원을 명시한 참 공약으로 국민에게 선택받겠다는 협약식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4일 유권자들은 내 고장의 살림꾼이 되겠다며 출마한 후보들이 약속대로 참 공약을 만들었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권이 4월 국회에서 '매니페스토 선거법'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후보자들은 정책 공약집을 만들어 유권자에게 배포할 수 없다. 정당이 정당 정책 홍보물을 만들 수는 있지만 이는 당원들만 볼 수 있다. 정책 공약집을 만들어 돌렸다간 당장 선거법 위반으로 조사받는다.

물론 강봉균 열린우리당.이방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등 5당의 정책 책임자들은 이런 법적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지난달 20일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선거법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학법 개정 여부를 놓고 대결하는 와중에 선거법 개정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당시 여야 어느 쪽도 선거법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공론화하지 않았다.

결국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공약을 뒤지거나, 언론 보도를 통해 공약을 접해야 한다. 유권자에게 배포되는 '선거공보'에 후보자가 공약을 소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최대 12면에 불과한 공보엔 재산.병역.납세.전과.직업.학력.경력 등의 의무 기재 사항을 담아야 한다.

후보자들이 남은 지면을 화려한 이력이나 사진 대신 딱딱한 공약으로 채울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매니페스토 선거의 당위는 모두가 동의하는데 정작 매니페스토 공약은 무엇인지 유권자들이 따져보기 어려운 희한한 구조로 치러지고 있다.

정치권은 이번 지방선거 이후라도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채병건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