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평양 땅 밟으면 그 자체로 종전선언, 북한 이번에도 “평양 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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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방문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으로 출발하기 전 8일 서울에서 수행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 미국 국무부]

평양을 방문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으로 출발하기 전 8일 서울에서 수행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 미국 국무부]

북한은 지난 7일 방북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일행에게 2차 북ㆍ미 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을 적극 제안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북한 관료들은 공식 석상이 아닌 별도 식사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2차 북ㆍ미정상회담을 하러 평양을 방문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평양 집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 12일 열렸던 첫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장소 줄다리기를 벌일 때도 북한은 백악관은 물론 한국 정부에까지 평양 회담을 희망한다고 알렸다.

지난달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카퍼레이드를 하며 평양국제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카퍼레이드를 하며 평양국제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이 평양을 미는 이유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수십만명의 평양 주민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극렬하게 환영하는 카퍼레이드와 같은 초대형 이벤트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 뒤 정상회담장에서 최대치를 얻어내는 데서 평양이 최적지다. 북한 입장에선 이미 9월 남북 정상회담 평양 개최로 ‘예행연습’도 마친 상태다. 회담 진전 상황에 따라 깜짝 일정을 넣으며 완전히 바뀐 북ㆍ미 관계를 전세계에 과시할 수도 있다. 9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백두산 방문을 마지막 일정으로 넣었던 게 한 사례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 땅을 밟는 자체가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다. 그 자체로 대북 체제보장 신호탄이다.

2009년 8월 4일 억류된 미국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앞 줄 왼쪽) 전 미 대통령 일행과 김정일(앞 줄 오른쪽) 국방위원장의 기념사진 [사진 조선중앙통신]

2009년 8월 4일 억류된 미국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앞 줄 왼쪽) 전 미 대통령 일행과 김정일(앞 줄 오른쪽) 국방위원장의 기념사진 [사진 조선중앙통신]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평양 초대장’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현재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여론을 무시하고 평양행이라는 도박을 할지는 미지수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적은 한 번도 없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 2009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지만 이는 모두 전 대통령 신분이었다. 2000년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을 검토한 적은 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며 클린턴은 방북을 포기했다. 중동평화 협상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클린턴은 자서전 『마이 라이프』에 이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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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의 워싱턴행도 일각에서 거론되지만 현 시점에선 가능성이 크지 않다. 14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비행을 김 위원장이 감행할지도 의문인데다, 경호 문제 등으로 서울 방문에 반대했던 북한 당국이 워싱턴행을 극구 만류할 가능성이 크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평양이 제일 가능성이 낮고 워싱턴도 낮은 편”이라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비핵화에 대한) 성과가 없을 때 가져올 문제점이 있다. 게다가 평양에 가면 트럼프 대통령이 조연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어려운 장소”라고 말했다. 그래서 외교가에선 유럽내 제3국이 거론된다. 한국 정부는 이번에도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서처럼 판문점을 희망할 것으로 관측된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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