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실기업-6공의 「뜨거운 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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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새 경제팀이 구성된 지 1개월이다. 빨리 결정하라는데 국민적 합의 위에 공개적으로 정책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승수 상공장관)
『부실의 원인에는 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 하루 이자만도 4억 원씩 불어나니 정부의 신속한 결단이 절실하다.』 (김우중 대우그룹회장)
지난해 9월 이후 세간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우조선에 대한 두 당사자의 엇갈린 시각이다.
78년 정부의 강력한 중화학공업추진작업으로 탄생한 대우조선은 불과 10년만에 엄청난 부채와 조선업에 대한 불안한 장래로 6공화국의 경제정책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산은 실사에 따르면 이 회사의 부채는 88년6월말 현재 1조3천8백67억 원, 이월결손금은 4천6백54억 원으로 자산재평가를 감안하더라도 자본금 6천80억 원의 62.2%를 잠식한 상태다.
87년에 단행한 4천억 원 증자의 효과는 이미 상실된 지 오래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부채덩어리가 아직도 명맥을 잇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대우조선말고도 6공화국이 처리해야 할 부실·문제기업도 더 있다.
대우조선보다 규모는 작지만 조선공사, 한국중공업 등 부실기업의 처리가 현안으로 남아있고 경우는 다르지만 경영권분쟁, 노사분규로 6개월째 조업을 중단하고 있는 연합철강이 골칫거리다.
조공은 노르웨이의 다목적선인수거부로 6천8백75만8천 달러의 손해를 보게 된 것을 계기로 지난해 4월 법정관리로 넘어갔으며 현재 제3자 인수작업이 추진되고 있으나 지지부진, 88년 한햇 동안 한 척의 배도 수주하지 못한 채 해를 넘졌다. 신규 수주는 커녕 말레이시아로부터 수주한 4척의 선박조차 제 기일 내에 만들어내지 못해 부실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태다.
조공의 87년 말 현재 누적적자는 2천8백78억 원, 부채는 6천1백27억 원에 달했으며 88년에는 그 규모가 더욱 커졌다고 보아야한다.
엉망이기는 한중도 마찬가지다. 87년 결손이 8백93억 원에 누적적자가 2천6백42억 원, 여기에 88년 예상적자 7백억 원을 합하면 누적적자는 3천억 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불입자본 4천2백10억 원 중 3천7백60억 원의 자본잠식이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연합철강은 87년만 해도 매출액 4천2백」5억 원, 당기순익 2백16억 원으로 자본금 95억 원에 비해 엄청난 이익을 올린 알짜회사다.
그러나 88년4월부터 노사분규에 휩싸이고 여기에 경영권분규까지 가세, 6개월간의 조업중단으로 관련업계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동국제강의 인수당시 권력행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학봉씨의 구속으로 연철사태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같은 6공화국의 부실·문제기업은 발생원인에 있어서는 제3, 제5공화국 때와 흡사하나 처리과정에 있어서는 확연히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기업에 간여해 부실기업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과거에는 정부나 기업의 비리가 들춰질 것을 염려, 비공개로 자금지원 등의 혜택이 주어졌다.』 (KDI 이원영 박사)
그러나 처리과정은 공개리에 하겠다는 것이 6공화국에 들어와 크게 달라진 점이다.
이들 문제기업의 발생시점이 지난 정권 때라, 새 정권이 구태여 멍에를 질 필요가 없고 민주화시대에 맞춰 비공개에 따른 불필요한 잡음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정부도 이점은 분명히 하고 있다.
『예전에는 비밀리에 했지만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국민의 여론을 들어 처리할 계획이다. 또 예전에는 정부지원이 전부였지만 당해 기업의 자구노력이 우선적인 선행조건이다.』 (박운서 상공부산업정책국장)
정부의 자세와 결의가 어떻게 바뀌었든 6공화국이 떠맡은 부실·문제기업중 조공·한중의 처리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두 기업은 공개입찰로 매각한다는 방침이 서있고 조공은 한진·진노, 한중은 현대·삼성·쌍룡 등이 눈독을 들이고 있어 기업자산에 대한 평가와 경매절차만 거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철 역시 분규해결에 시간은 걸리겠지만 포철의 1백20만t 냉연공장의 준공으로 수급에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여 국가경제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력이 생졌다.
문제는 대우조선이다. 부실의 규모가 엄청난 만큼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를 형편이다.
게다가 이익집단별로 각자의 목소리가 날로 커져 가는 현실에서 국민의 공감대 형성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대우 스스로에 맡겨야 한다. 망할 기업을 정부가 붙들고 있을 경우 비용만 계속 늘고, 게다가 부실기업을 잘못 지원했을 때 경영자나 근로자들에게 「조그맣게 사업을 하면 망해도 크게 하면 안 망한다」는 안이한 생각을 갖게 해줄 염려가 있다.』 (서강대 김광두 교수)
그러나 대우 자체에 맡겨 만일 도산했을 경우에 닥칠 사태는 어느 누구도 예측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관계기관의 추정에 따르면 대우그룹계열사의 전체 금융기관차입금은 88년8월 현재 7조2천6백10억 원으로 대우조선이 도산했을 경우 연쇄부도로 국내외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다는 것.
뿐만 아니라 대우조선 근로자1만4천 명, 하도급 중소업체 근로자 5천명이 일자리를 잃게되고 거제지역 경제가 가라앉아 지역 근로자 및 주민들이 타격을 받게된다. 대우조선이 지급해야 할 퇴직금만 2백억 원, 해고수당은 2백50억 원에 달한다. 함부로 손을 대기 어려운 것이 대우조선의 처리문제다.
이와 관련해 한승수 상공장관은 최근 정부의 지원규모를 확정하기에 앞서 대자그룹에 대해 ▲조선업 회생을 도모할 수 있는 확실하고 근거 있는 계획제시 ▲5년간 임금동결 등 종업원들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 결의 천명 ▲업종다각화 등 대우조선 경영정상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줄 것을 요구했다.
대우조선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판단이 서야 이를 둘러싼 각계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대해 대우 측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우조선의 중병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울상이다.
과거와는 달리 부실기업 지원에 대해 정당성을 찾으려는 정부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자칫 수술의 시기를 놓쳐 시의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에서 대우조선문제는 새 경제팀의 숙환이 되고 있다. <한종범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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