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힘이 미투 눌렀다···캐버노 '50:48' 박빙 인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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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이 자난달 27일(현지시간)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 출석, 성폭력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이 자난달 27일(현지시간)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 출석, 성폭력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힘이 '미투(Me too)'의 힘을 웃돌았다.

성폭행 의혹 캐버노, 상원 인준 통과 성공 #연방대법원 보수세력이 다수 장악하게 돼 #바람타는 하원 중간선거는 민주당 유리해질 듯

고교시절 성폭행 미수 의혹이 제기됐던 브렛 캐버노(53)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준안이 6일(현지시간) 상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캐버노 인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확산되며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내부 단속에 성공하면서 큰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캐버노의 인준으로 연방대법원의 '보수 우위' 구도는 한동안 계속되게 됐다.

미 상원 본회의 표결 결과 캐버노 인준 찬성은 50표, 반대는 48표였다. 공화당 의원 51명 중 1명(스티브 데인스 몬태나주 상원의원)은 딸 결혼식 참석으로 불참했다. 민주당은 보수성향이 강한 선거구(웨스트버지니아주) 출신 상원의원인 조 맨친이 막판 대오에서 이탈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그 밖에 공화당 의원 1명이 기권표를 던졌다.

이번 표결은 상원 기록에 따르면 1881년 스탠리 매튜스가 24대 23으로 인준된 이후 연방대법관 인선 중 가장 박빙의 인준으로 기록됐다.

6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의 연방대법원에서 대법관 취임식 행사를 하는 캐버노.

6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의 연방대법원에서 대법관 취임식 행사를 하는 캐버노.

이날 인준안이 처리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서명, 캐버노의 취임식이 신속하게 이어졌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캐버노는 훌륭한 대법관이 될 것이다. 그는 특출난 사람이며 우리 모두를 자랑스럽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캐버노 인준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먼저 '젊은 보수' 캐버노의 취임으로 미 연방대법원은 보수 쪽으로 확 기울게 됐다. 중도보수 성향이면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주요 사안마다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며 균형추 역할을 했던 앤서니 케네디 전 대법관이 지난 7월말 은퇴를 선언한 이후 연방대법원은 4(보수) 대 4(진보)의 구도였다. 하지만 앤서니의 자리를 캐버노가 이어받으면서 당분간은 보수 성향의 판결이 나올 공산이 커졌다. 미 연방대법관은 스스로 퇴임하지 않은 한 종신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닐 고서치(50) 대법관에 이어 캐버노까지 연방 대법원에 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보수세력의 결집에 성공했다.

또 하나는 이번 캐버노 인준이 중간선거의 사전 기싸움의 성격이 있었던 만큼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란 점이다.

6일 미 워싱턴DC의 연방대법원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이들은 "남은 자가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심판하자"고 외쳤다.

6일 미 워싱턴DC의 연방대법원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이들은 "남은 자가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심판하자"고 외쳤다.

공화당은 "진보세력의 공세를 막아냈다"(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고 자평하고 있다. 민주당의 '캐버노 흔들기'에 위기를 느낀 보수세력이 총결집해 캐버노를 지켜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화당이 성폭행 미수 의혹이 있는 후보까지 대법관으로 밀어부치는 것을 본 부동층 유권자, 특히 여성과 젊은층이 민주당쪽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이날 의사당은 물론 연방대법원 건물 등 주요 건물에 캐버노 인준에 반대하는 시민 수백 여명이 몰렸다. 본회의장에서도 시위대의 방해로 진행이 수차례나 중단되기도 했다.

캐버노 파문은 고교 시절 술에 취한 캐버노 지명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피해여성 크리스틴 포드의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를 계기로 불거졌다.

크리스틴 포드 미 팰로앨토 대 심리학과 교수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이 고등학생 시절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EPA=연합뉴스]

크리스틴 포드 미 팰로앨토 대 심리학과 교수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이 고등학생 시절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 포드와 캐버노 지명자가 시차를 두고 증인으로 등장해 진실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연방수사국(FBI)이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별다른 내용없이 조사를 마무리하면서 '백악관-FBI 유착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의회전문매체 '더 힐'은 이날 캐버노 인준 사태의 승자로 '상원 공화당 세력'과 '하원 민주당 세력'을 들었다. 상대적으로 '바람'의 영향이 큰 하원 선거의 경우 캐버노 인준 강행에 대한 반대여론을 업고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편 더 힐은 '패자'로 '미국'을 들었다. "정치적 양극화가 중립적 중재자로서의 미국 연방대법관의 명성을 바닥에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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