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 원수의 권력 사유화” … 착잡한 MB 중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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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호 34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어제 1심 선고공판에서 중형이 선고됐다. 대통령 재임 시 뇌물·횡령 등의 범죄 행위를 저질렀고 그 과정에서 국가권력을 사유화했다고 판단, 엄중한 책임을 지운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죄에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줄 잇는 전직 대통령 수난사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1심서 15년 선고 … 잇단 대통령 수난사 참담 #김기춘 법정구속, 조윤선·신동빈은 집행유예

재판장 정계선 부장판사는 TV로 생중계된 선고 재판에서 16가지 공소사실 중 7~8가지를 유죄로 인정한 뒤 77세의 피고인에게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원을 선고했다.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자금 횡령을 유죄로 인정하고 삼성그룹이 대납한 다스 미국 소송비와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서 받은 현금을 뇌물로 판단했다. 특히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 때부터 제기된  ‘다스는 누구 것인가’라는 국민적 의혹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첫 사법적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다스의 실소유자이고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했다. 이런 판단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이 전 대통령이 재산 관계를 속이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됐고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대통령 무자격 논란’까지 번질 수 있어 또 다른 갈등의 불씨로 번질까 걱정된다.

재판부는 청와대 공무원에게 다스 미국 소송을 지원하게 했고 국가정보원 자금을 상납받고 탈세 방안까지 검토·보고하게 했다는 검찰 측 주장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이러한 행위는 공직사회 전체와 우리 사회 전반에 큰 불신과 실망을 던져줬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유죄 근거가 대부분 옛 측근들의 진술에 두고 있다는 점은 항소심에서 다툼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 증거의 대부분은 인증(人證), 즉 사람의 진술인 반면 그걸 깨는 객관적 물증(物證)을 제시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정 부장판사가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등에서 활동한 이력을 거론하며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결이라는 주장도 일각에서는 제기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판결은 세상에 없다. 정치적 사건일수록 찬반양론이 거세다. 법관에 대한 인신공격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날 재판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 전 대통령은 불출석을 택했다.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서 ‘반쪽재판’ ‘정치재판’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두 전직 대통령이 잇따라 ‘TV 생중계 선고 법정 불출석’이라는 선례를 남기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겠다며 도입한 이 제도 자체에 대한 무용론도 나오는 지경이다.

이날 법원에선 보수단체 불법 지원(‘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선고도 진행됐다. 김 전 실장은 실형과 함께 법정구속된 반면 조 전 수석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는 뇌물 혐의에 있어 ‘수동적인 강요 피해자’에 가깝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먼저 적극적으로 금액(70억원) 지원을 요구했다”며 집유로 석방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보수 정부 9년에 대한 법적 심판이 이어지면서 철저한 과거 청산도 좋지만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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