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지금 ‘숏커버링 장세’ … 금리 오르면 제동걸릴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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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호 15면

지난 1년간 정부의 대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이어졌다. 투기지역 또는 투기과열지구로 묶인 서울 25개구의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16%를 넘었다. 정부는 보유세 강화와 대출 규제를 골자로 한 9·13 대책에 이어 21일에는 수도권 30만채 신규주택 공급 계획을 내놓으며 집값 잡기에 나섰다. 투자자는 정부의 의도대로 분위기가 안정될지, 수요가 이어지며 다시 달궈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럴때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증권시장의 격언이다. 세계증시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고수들이 경험한 시장 속성과 투자 요령을 담은 격언을 통해 현재 부동산 시장을 짚어봤다.

증시 격언으로 본 부동산 시장 #최근 1년 서울 아파트값 16% 올라 #공급 부족 등 수급이 제일 큰 영향 #10년 투자해도 상승기 놓치면 손실 #“참는 사람이 돈 번다” 시간도 투자 #가격 많이 오른 단지 상승 탄력 강해

1. 수급은 재료에 우선한다

2년 전부터 꾸준히 청약에 나섰던 회사원 이지훈(46)씨는 올 초 동작구 흑석동 A아파트 77㎡(약 23평)를 8억5000만원에 구입했다. 1~2년 전보다 평균 1억5000만원 가량 올랐지만 이조차 매물이 귀해 어렵사리 살 수 있었다. 이씨는 “부부합산소득이 7000만원을 넘은데다 가점이 낮아 청약에 번번이 떨어졌다”며 “정부가 청약 추첨 비중을 낮추는 것을 보니 앞으로도 가망이 없겠다 싶어 할 수 없이 매수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화 IBK기업은행 부동산 팀장은 “청약 가점이 낮은 젊은 부부는 물론 전세로 살면서 새 아파트 분양을 기대했던 중산층까지 매매로 돌아서면서 수요가 폭발했다”고 분석했다. ‘수급이 모든 재료에 우선한다’는 증시 격언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실제 코스피에서도 외국인들이 순매수에 나서면 상승폭이 커진다. 하지만 주택은 모든 국민이 강제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증시와 다르다. 주식은 사지 않으면 오르건 내리건 신경쓸게 없는 ‘중립’이지만 주택은 한채를 가지고 있어야 중립이다. 무주택자는 집값이 오르면 손해를 본다는 점에서 숏포지션, 다주택자는 집값 상승에 베팅했다는 점에서 롱포지션인 셈이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집값 하락을 예상하고 구매시기를 늦췄던 실수요자들이 집값이 급등하자 서둘러 현물 매수에 나서는 ‘숏커버링 장세’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숏커버링이 나타날때는 상승장이지만 더 오를지, 여기가 상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2. 주식을 사기보다는 시간을 사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금융사를 운영하는 최모(43)대표는 TV에서 부동산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지난해 초 창업 자금 마련을 위해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191㎡를 15억원에 팔고 전셋집으로 옮겼다. 판 집이 지금까지 2억원 이상 올랐다. 최 대표는 “이토록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할 줄 알았다면 창업을 뒤로 미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집이나 주식이나 바닥에서 사서 상투에서 팔면 가장 좋지만 투자 타이밍을 정확히 잡는 건 쉽지 않다. 투자전략가들이 장기간 적립식 투자를 권유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래에셋운용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6월말 기준으로 과거 8년간 코스피지수에 투자했다면 수익률은 133.5%에 이른다. 하지만 주가가 가장 많이 올랐던 10일을 놓치면 수익률은 22%로 뚝 떨어진다. 주가 상승률이 높은 상위 30일을 놓치면 수익은 커녕 손실(-50.15%)이 났다. 장기 투자는 부동산 시장에서도 통한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한국감정원)는 106.5로 2009년 1월이후 10년간 15% 이상 올랐다. 하지만 매매가격지수가 기준시점(100)보다 높아진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연구소장은 “단기적인 시각으로 아파트를 사고 팔면 물가보다 낮은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헤지하려면 주거 선호도가 큰 단지나 지역에 5년 이상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 밀집모자는 겨울에 사라

워런 버핏은 “주식시장은 적극적인 사람에게서 참을성이 많은 사람에게로 돈이 넘어가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기준 임대사업자 등록건수는 1050건으로 8월 345건에 비해 3배가 늘었다. 9·13 대책 이후에도 기존 주택에 대해선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양도세 중과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대주택은 적어도 8년간 매물로 나오긴 어렵다. 이미 겨울에 밀집모자를 산 사람들은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올해 서울 입주 물량은 약 3만6000세대에 이르지만 재건축 등으로 허무는 기존 주택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증가분은 많지 않다”며 “공급이 말라버린 게 최근 급등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벌써 여름이 왔다 싶으면 겨울을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쉬는 것도 투자라는 격언도 있다.

4. 산이 깊으면 골도 깊다

앞으로 서울 집값에 대한 전문가들 전망은 엇갈린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일시적으로 집값이 주춤할 순 있지만 아파트 가격이 꺾이긴 어렵다”며 “달리는 말에 올라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는 과거 수익률이 좋은 종목이 미래에도 높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는 시장 격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서울을 비롯해 가격이 많이 오른 단지일수록 상승탄력이 강하고 자금이 지속적으로 몰린다.

이와 달리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추세적 상승은 힘들다”고 봤다. ‘산이 깊으면 골도 깊다’는 증시 격언처럼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아파트 값은 1년새 2~3억원씩 뛰더니 평균 매매가격이 14억원을 넘어섰다. 이 전 센터장은 “올 들어 강남 아파트 가격 급등이 강북에도 영향을 줬지만 강남권 주도주(아파트)만으로 가격 상승세를 지속적으로 이끌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기준금리가 오르고 있어 집값 상승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최근 세계 주요 도시에선 몇년간 치솟았던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부동산 컨서팅업체인 세빌스에  따르면 런던 도심 집값은 2014년 고점 대비 약 18% 하락했고, 호주 시드니도 10개월 연속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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