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뇌물 '스모킹 건'은 이팔성 분노의 비망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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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인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0년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인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5일 열린 이명박(77)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비망록이 신빙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이 이팔성(74) 전 회장에게 받은 19억원 상당을 뇌물로 인정하면서 그 근거로 삼은 것이다.

이날 언급된 이 전 회장의 비망록은 지난달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 심리로 진행된 이 전 대통령의 공판에서 공개됐다.

비망록에는 이 전 대통령에게 금융계 요직을 청탁하며 돈을 건넨 후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이 전 대통령 뇌물 혐의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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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망록은 이 전 회장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 전 대통령 맏사위 이상주씨에게 5000만원씩 전달하기 시작한 뒤 작성됐다.

그 내용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인 2008년 1월부터 서울 통의동에 마련된 이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집무실을 찾았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을 만났지만 인사 청탁이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 전 회장은 대통령 취임식 이틀 전인 2008년 2월 23일 ‘통의동 사무실에서 MB 만남. 나의 진로에 대해서는 위원장, 산업B, 국회의원까지 얘기했고 긍정 방향으로 조금 기다리라고 했음’이라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적었다. 이에 대해 이 전 회장은 검찰에 ‘금융위원장, 산업은행 총재, 국회의원’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 취임 뒤인 3월 23일엔 “이명박에 대한 증오감이 솟아나는 건 왜일까”라고 쓰기도 했다. 이어 같은 달 28일엔 “이명박과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썼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 만큼의 돈을 지원했는데도 (자신이 원하는) 인사상 혜택이 없어 이에 대한 분개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비망록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의 사위인 이상주(48) 변호사는 검찰에서 “이팔성이 ‘가라(허위)’로 만든 것”이라며 “인생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지난 8월 17일 열린 재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팔성 전 회장의 진술이 얼토당토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전 회장에 대해 “한 번도 선거운동 때 얼굴 비치지 않았다.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다. 당선되고 나서 나를 만나려고 노력을 많이 한 건 사실인 것 같다”며 “그러나 누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인사문제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이팔성 전 회장이) 나를 궁지에 몰기 위해서 그렇게 진술하지 않았나 하는 선의로 생각해본다. 그런데 정말 너무 얼토당토않다. 차라리 이팔성씨를 불러다 거짓말 탐지기 해서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갖고 있다”라며 억울해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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