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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게임 피처' 류현진의 '빅픽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8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이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

1회 첫 타자 초구로 느린 커브 승부 #이후 빠른공 비중 높이며 강약 조절 #5회 이후 패턴 확 바꾼 '빅게임 피처'

LA 다저스의 포스트시즌 1선발 류현진(31)이 1회 초 마운드에 올랐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번타자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를 상대해 류현진이 초구를 던졌다. 시속 127㎞ 커브. 오른손 타자 아쿠나의 바깥쪽 보더라인을 스친 스트라이크였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경기를 운영하는 류현진의 첫 선택은 ‘안단테(Andante)’였다.

이후 류현진의 현란한 피칭이 이어졌다. 2구 컷패스트볼(볼) 이후 4개 연속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아쿠나를 2루수 팝플라이로 잡은 결정구는 시속 150㎞ 직구였다. 가장 느린 공으로 시작해 가장 빠른 공까지 점검한 류현진은 자신감을 갖고 7이닝(4피안타 무실점 8탈삼진)까지 끌고 갔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5일 애틀랜타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LA 다저스 류현진이 5일 애틀랜타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투수에게 초구는 당일 경기의 방향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구위와 제구를 점검하는 공이며, 상대 타자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정민철 MBC 해설위원은 “커브가 주무기가 아닌 투수가 초구를 커브로 던진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며 “주무기가 아닌 공을 던지는 건 자심감의 표출이며, 타자의 심리를 흔드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 경기를 중계한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류현진이 1회부터 시속 150㎞가 넘는 패스트볼을 뿌렸다. 근래 들어 가장 좋은 컨디션이다. (가장 빠른 공과 느린 공이 잘 들어가자) 타자들은 오거리 앞에 선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패스트볼, 컷패스트볼,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 등 5가지 구종의 구위와 제구가 모두 안정되자 애틀랜타 타선은 류현진의 5가지 무기에 모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현진은 빠르게 경기를 장악했다. 정규시즌 36%에 그쳤던 패스트볼 비중이 이날 꽤 높았다. 높았다. 특히 1회 투구수 17개를 던지는 동안 10개가 패스트볼(59%)이었다. 직구 구위(평균 시속 148㎞)가 평소보다 좋기도 했지만 활용빈도가 꽤 높았다. 특히 애틀랜타 타순이 한 바퀴 돈 3회까지 류현진은 어깨 수술을 받기 이전 시즌(2013~2014년)처럼 패스트볼을 자신있게 스트라이크존 좌우로 꽂았다. 당시에는 직구-체인지업 조합이 대부분이었다면 포스트시즌 1선발이 된 지금은 직구를 받쳐줄 구종이 4가지 더 있었다.

류현진은 5이닝 전력투구를 생각한 것 같다. 도망가는 공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빠르고 자신있게 승부했다. 5회를 기점으로 패스트볼 비중을 낮췄다. 다저스 타선이 1회 1점, 2회 3점을 뽑아 4-0으로 리드한 덕분에 애틀랜타 타자들이 쫓기기 시작했다. 이를 간파한 류현진은 패스트볼을 카운트 잡는 공으로 활용하고, 컷패스볼과 체인지업,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많이 썼다.

5회부터 류현진의 에너지가 떨어지자 피칭 리듬은 다소 느려졌다. 특히 6회와 7회에는 컷패스볼과 커브의 비중이 올라갔다. 5회 이전의 류현진과 6회 이후의 류현진이 전혀 다른 투수 같았다.

류현진은 투구수 104개를 기록한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경기 초반 50%를 넘었던 패스트볼 비중은 피칭을 마칠 때 40%(42개)로 내려갔다. 컷패스트볼(23개), 체인지업(21개), 커브(17개) 비중이 비슷했다. 슬라이더로 기록된 구종은 1개뿐이었다. 패스트볼 구위가 좋았기 때문에 패스트볼과 착각하게 만드는 컷패스트볼(좌타자용)과 체인지업(우타자용) 활용도가 높았다.

류현진이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을 7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연합뉴스]

류현진이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을 7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연합뉴스]

이 경기를 중계한 김선우 MBC 해설위원은 “오늘 류현진이 모든 공을 잘 던졌지만 오른손 타자 바깥쪽을 공략한 커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를 대신해 포스트시즌 1선발로 나선 부담 속에서 류현진은 영리한 게임플랜을 세웠고, 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덕분에 다저스는 시리즈 1차전을 6-0으로 완승했다. 류현진이 7이닝을 마치고 마운드에서 내려오자 3루쪽 관중석을 가득 채운 팬들과 다저스 레전드 스타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환상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에 감동한 관객의 ‘커튼콜’이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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