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할 의무’vs‘방어할 권리’…‘감방 압수수색’은 정당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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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 압수수색' 문제없나 

양홍석 변호사는 구치소 압수수색과 관련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라는 측면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양홍석 변호사는 구치소 압수수색과 관련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라는 측면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증거인멸 가능성을 앞세워 구속해 놓고, 또다시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다며 구치소 수감실까지 압수수색하는 것이 맞는 수사방법인지 의문입니다.”

우병우 수감실 압수수색한 검찰 #기록과 메모 등 개인물품 수거 #‘피의자 방어권’ 무력화 우려 #“인권침해적 강제수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인 양홍석 변호사는 ‘감방 압수수색’을 비인권적 수사기법으로 규정했다. 구속 수감자가 생활하는 구치소 내 감방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무력화하는 조치라는 게 그 이유였다. 또 방어권과 관련한 자료가 아니라 해도 사생활이 담긴 수감자의 일기장과 기록 등을 압수해 가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 강제수사라고 그는 덧붙였다.

양 변호사는 “구속 수감자가 검찰 수사와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변호인과 주고받은 내용이 검찰에 넘어갈 경우 법적 대응전략 자체가 그대로 노출되는 셈”이라며 “수감실 압수수색은 대부분의 경우 아무 실효성 없이 끝나는데 그로 인한 폐해와 문제점이 너무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개인 기록과 메모·서신 등이 타깃 

구치소 수감실 압수수색은 특별검사팀과 검찰 특수부 검사들이 종종 사용하는 수사 기법이다. 수감실에 보관된 개인 기록 등에 수사에 필요한 핵심 단서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에 이뤄진다. 특히 수감자가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서신’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우병우 전 수석은 현재 구속 상태에서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3일 우 전 수석의 서울구치소 수감실을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우병우 전 수석은 현재 구속 상태에서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3일 우 전 수석의 서울구치소 수감실을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감실을 압수수색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 전 수석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공작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우 전 수석이 수감실에서 작성한 각종 메모와 기록 등 개인 물품에 혐의를 입증할 중요 단서가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엔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의혹사건을 수사한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드루킹을 포함 구치소에 수감된 피의자 4명의 수감실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특검은 구속 수감된 피의자들이 변호인 등을 통해 ‘말 맞추기’를 계획하고 있다는 의심을 토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때도 특검팀이 수거한 물품은 각종 서신과 메모 등 수감자들이 작성한 ‘기록’ 위주였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팀 지난해 1월 역시 주요 피의자들의 수감실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당시 수용자들이 공모해 범죄 단서가 될 만한 물품을 숨기거나 소지품을 활용해 입장을 조율한 정황을 의심해 압수수색에 나섰다고 밝혔다.

방어권 행사 무력화…"반인권적 강제수사"  

이같은 구치소 압수수색은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적법한 수사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특수수사에 정통한 검사들은 구치소 압수수색을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한다. 만약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압수수색에 나서지만, 이같은 강제수사가 피의자의 방어전략 노출과 심리적 압박 등 헌법적·인권적 측면에서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구치소 압수수색이 방어권 보장 문제와 피의자의 인권적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부분에는 충분히 공감한다”며 “그럼에도 수감된 상태에서 얼마든지 증거 인멸과 위증, 조직적인 말맞추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사하는 입장에선 방치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와 검찰 등에 따르면 구치소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물품 중 변호인 접견 내용 등 혐의 입증과 관련이 없는 자료는 수감자에게 돌려준다고 한다. 문제는 증거 인멸과 관련한 기록인지, 위증·허위 진술의 단서인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선 해당 기록을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검찰 입장에선 변호인과 논의를 통해 세운 방어전략 등 방어권 행사와 관련한 자료 역시 ‘검토’라는 명목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구치소 압수수색의 경우 영장을 발부받았다 해도 일반적인 사무실이나 주거지 압수수색과는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한다”며 “헌법에서 보장하는 피의자의 방어권과 인권적 측면에서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대한변협 차원에서 구치소 압수수색으로 인한 문제점을 논의해보겠다고 덧붙였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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