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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군산공장 문 닫자 … 56억 들인 부품사 로봇 고철 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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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다시 뛰자, 자동차 산업 <하> 

지난달 4일 오전 전북 군산시 소룡동 C사 공장. 한창 일할 시간인데도 공장은 조용하다. 조명 스위치를 올리자 자동차 부품 제조용 로봇 56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GM의 준중형 차량(라세티·크루즈)용 부품 가공 설비다.

무너지는 ‘차산업 뿌리’ 부품사 #완성차업체 부진 여파 휘몰아쳐 #3곳 중 1곳이 상반기 영업적자 #“외환위기 이후 최대 위기 겪는 중”

C사에 따르면 C사는 이 로봇을 1대당 6500만원에 샀다. 로봇이 제품을 가공할 때 가공 위치를 잡아주는 보조용품(지그)을 포함하면 1대당 투자비는 약 1억원이다. 일부 로봇은 포장용 테이프조차 제거하지 않은 새 제품이지만, 한국GM이 5월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고철 신세가 됐다.

이 회사의 L 이사는 “당초 한국GM과 협의해서 산 로봇이나 책임을 지라고 했더니 한국GM은 로봇 1대당 고작 450만원에 매입하겠다고 하더라”며 고개를 떨궜다.

전북 군산시 한 공장의 차량 부품 제조 로봇. 한국 GM 군산공장 폐쇄 후 멈춰섰다. [문희철 기자]

전북 군산시 한 공장의 차량 부품 제조 로봇. 한국 GM 군산공장 폐쇄 후 멈춰섰다.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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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1000억원 안팎이던 이 공장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약 20억원. 정규직 180명이 북적이던 이 공장에서 지금은 28명만 일한다. L 이사는 “남아있는 근로자의 30%를 연내 추가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산업의 ‘뿌리’ 역할을 하는 부품사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100개 자동차 부품기업을 조사한 결과, 31개사가 상반기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올해 영업이익은 반 토막(-49.2%) 났고 매출(-3.8%)도 줄었다.

이는 국내 완성차 산업이 침체한 데 따른 결과다. 국내 완성차 제조사는 2011년(465만 대)을 기점으로 꾸준히 생산량(411만 대·2017년)이 감소했다. 완성차의 나빠진 경영실적이 완성차 계열사로 옮겨졌다가 1차→2차→3차 협력업체 순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중견 부품 기업이 무너지고 있다”며 “자동차 산업 생태계 붕괴의 단초”라고 경고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식 구조를 갖추면서 불황의 파급력은 더 커졌다. 수직적 산업 구조에선 완성차가 기침하면 중소 부품사는 폐렴을 앓는다. 중소 부품사가 직접 연구개발(R&D)을 하는 대신 완성차 R&D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한국 자동차산업 R&D 투자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87.72%·2016년)은 7년 전(82.74%)보다 5%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직적 한국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서 완성차는 손실의 일부를 하청업체와 분담할 수밖에 없다”며 “부품사가 지금처럼 원가계산서상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데 급급하면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군산=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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