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투자 반년째 감소 … 외환위기 때 10개월 이후 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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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설비투자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오랜 기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비 증가세도 멈췄다. 내수의 두 축인 소비와 투자가 모두 부진한 셈이다. 한국 경제가 하강세에 접어들었다는 위기 신호는 한층 뚜렷해졌다.

통계청 8월 산업활동동향 #소비, 휴가 성수기에도 제자리 #“규제 없애 기업 투자물꼬 터줘야”

통계청이 2일 내놓은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설비투자는 전달보다 1.4% 줄었다. 지난 3월 이후 6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1997년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0개월 연속 설비투자가 줄어든 이후 최장기간 설비투자 감소다.

그간 투자를 견인한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가 줄며 ‘투자 절벽’이 나타나고 있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호조세를 보이던 반도체 업체의 설비투자가 올해 3, 4월께 마무리되며 투자가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반도체 생산설비 등 특수산업용 기계를 포함한 기계류 투자는 8월에 한 달 전보다 3.8% 감소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달 전체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5% 증가했다. 7월 이후 두 달 연속 늘었다. 하지만 6, 7월에 늘었던 소비는 주춤했다. 8월이 휴가 성수기임에도 소비를 나타내는 소매판매지수의 전달 대비 증가율은 ‘0’에 머물렀다.

최악의 고용 한파에 내수 부진이 겹치며 경기 향방을 가늠하는 지표들도 한국 경제가 내리막길에 서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현재 경기 상태를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달에 98.9를 기록했다. 4월부터 5개월 연속 내림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98.8) 이후 최저치다. 미래 경기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4를 나타냈다. 한 달 전보다 0.4포인트나 하락했다. 2016년 2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성장률도 점차 낮아질 거라는 게 주요 기관의 진단이다. LG경제연구원은 한국 경제 성장률이 올해 2.8%를 기록한 뒤 내년에는 2.5%로 고꾸라질 것으로 봤다. 현대경제연구원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2.8%, 내년 2.6%로 예상했다. 투자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주 근거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도체 이외의 산업에서 투자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반도체마저 투자가 꺾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투자 부진이 장기화해 성장엔진이 식으면 침체기가 길어질 수 있는 만큼 투자 심리를 시급히 살려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대외 투자 여건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기업의 비용구조를 악화시켜 기업의 투자 여력을 더욱 줄이고 있다”며 “기업의 비용을 늘리는 정책을 가급적 지양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해 기업의 투자 심리를 북돋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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