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목숨끊은 치과원장···환자들 선납금은 수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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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한 치과병원에서 환자들에게 폐업 사실을 알린 문자메시지. 대구=김정석기자

대구 한 치과병원에서 환자들에게 폐업 사실을 알린 문자메시지. 대구=김정석기자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한 치과병원에서 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갑자기 폐업하면서 선납금을 낸 환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됐다. 환자들은 피해 규모가 총 100여 명, 3억2000여만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치과가 갑자기 폐업한 것은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달 21일. 병원을 운영하던 원장 김모(52)씨가 생활고를 이유로 같은 달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다. 유가족들이 달서구보건소에 폐업 신고를 했다. 폐업 신고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환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피해 환자들이 치과병원의 폐업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달 27일이다. 치과 진료를 앞두고 있던 일부 환자들이 병원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문자메시지에는 '대표 원장님의 부고로 진료 진행이 어려워 문자드린다. 의료기관 개설자 사망으로 병원은 자동 폐업 처리되며 인수 관련도 시일이 필요하고 인수되지 않을 시 관할 보건소로 이관돼 관리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환자들은 임플란트나 교정 등을 위해 미리 병원에 지불한 선납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환자들은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750만원까지 병원에 진료비를 미리 냈다고 한다.

지난달 21일 폐업한 대구 달서구 한 치과병원 전경. [해당 병원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21일 폐업한 대구 달서구 한 치과병원 전경. [해당 병원 페이스북 캡처]

1일 달서구청에 항의 방문한 이모(57)씨는 1100만원을 들여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후속 치료를 받고 있던 상태였다. 이씨는 "임플란트 시술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발음이 새고 악취도 나는 상황"이라며 "환자들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폐업하면서 난감하게 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피해 환자들은 달서구보건소가 환자들의 피해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고 폐업 신고를 받아줬다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씨는 "의료법을 보면 관할 보건소가 의료기관 폐업 신고를 받기 전에 환자들에게 돌아갈 피해가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폐업을 하게 돼 있다"며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게 달서구보건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들은 이 치과병원이 갑자기 폐업하면서 모두 3억2000여만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현금이나 카드로 미리 치료비를 지급한 총액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피해 사실을 알리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달서구보건소 측은 "해당 금액은 환자들이 추정한 피해 금액이며 실제 선납금 규모나 피해 환자 현황은 파악 중"이라고 했다.

일부 환자들은 이 치과병원이 폐업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환자 김모(65)씨는 "추석 연휴가 끝나고 병원 앞을 지나다 우연히 폐업 사실을 알게 됐다. 병원 현관에 '내부 수리 중이어서 당분간 진료를 못한다'는 안내문을 봤는데 알고 보니 폐업됐던 것"이라며 "그 안내문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병원이 폐업된 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해당 게시물.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해당 게시물.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환자 김모씨는 자신도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후속 치료를 진행 중이었으며, 자신의 부인 조모(64)씨도 870만원을 미리 지불한 뒤 5개 치아 임플란트 시술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2개만 받은 상황에서 병원이 폐업했다고 전했다.

피해 환자들은 폐업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될 환자들이 추가로 나오면 피해 규모가 몇 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달서구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달서구보건소 관계자는 "의료기관이 대표자를 변경하거나 병원 위치 이동을 하기 위해 신고서를 낼 경우 사전에 환자들의 피해 여부를 확인 있지만 의료기관 개설자가 사망해 유가족이 서류를 갖춰 폐업 신고를 하면 이를 접수하지 않을 근거가 없다"며 "폐업 신고를 할 당시만 해도 환자를 이어 받을 인수자가 있었지만 인수 계약이 취소되면서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달서구는 앞으로 이 치과병원을 인수할 사업자가 나오면 피해 환자와 유가족·건물주 등과 만남의 자리를 추진해 해결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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