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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대신 발레 ! 새로 태어난 춘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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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백조의 호수, 지젤, 호두까기 인형…. 우리 귀에 너무나도 낯익은 고전 발레 레퍼토리다. 우아하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발레리나의 동작 하나하나에 눈이 멎는다. 그런데 이때 드는 한 가지 의문. 발레는 꼭 서양 이야기만을 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유니버설 발레단(단장 문훈숙)이 선보일 '춘향'은 반갑고 신선하다. 늘 익숙한 외국 작품을 그대로 들여와 무대에 올리지 않기에, 또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의 고전을 서양의 형식과 접목시키기에 그렇다. 총 3막의 완결판은 내년 4월 예정이지만 맛보기라 할 수 있는 쇼케이스가 다음달 2, 3일 경기도 고양 어울림극장에서 공연된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외국 안무가가 아닌 한국 창작자들의 힘으로 만들어진다. 한국 발레의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무대다.

# 어쩜, 첫날 밤도 예술이야!

발레 '춘향'의 첫 런 스루(run through.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연습하는 것)가 있던 20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 발레단 연습실. 문훈숙 단장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질 못했다. "조금만 더 애달프게, 감정을 담아서"라며 일어나 계속 시범을 보인다. 눈까지 지그시 감은 채 작품에 몰입한 눈치다. "문단장 현역 시절에 '춘향'했으면 딱 어울렸을 텐데…"라는 주변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정말? 지금이라도 다시 토슈즈 신을까?"

쇼케이스에서 공연될 춘향은 3막 중 1막(40분)이다. 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나 사랑을 꽃 피우고,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이별하는 스토리가 담긴다. 만남과 헤어짐을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에 녹여낸다. 특히 사랑이 한창 무르익는 여름엔 둘의 첫날 밤 장면도 있다. 옷고름이 하나씩 풀어질 때마다 춘향의 애틋한 감정이 춤사위로 승화된다. 중요한 것은 호흡. 조금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암시하지만, 이몽룡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춘향의 수줍음을 얼마나 우아하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유병헌 안무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같다. 현실적 표현과 발레의 품격을 균형있게 유지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 한번 더 감추고, 한번 더 돌아가고

서양 발레에선 볼 수 없던 장면들도 여럿 있다. 여인네들이 시냇가에 나와 긴머리를 감기도 하고, 어둑한 저녁 한 방에 모인 아낙네들이 다듬이를 두드리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런 한국적 감성 표현은 총연출을 맡은 배정혜 국립 무용단장의 몫. 문단장은 "스텝은 발레에서, 상체 동작은 한국 무용에서 많이 따왔다. 직설적인 발레의 표현을 돌아가고, 움츠리고, 맛깔스러운 완곡형의 무용으로 변형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배정혜 단장 덕분"이라고 말했다.

연출과 안무 이외 무대(천경순), 의상(이정우) 등도 외국인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무용평론가 문애령씨는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새로운 해석을 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용이론가 장인주씨는 "심청 이후 잠시 끊겼던 창작 발레의 맥을 '춘향'이 다시 살려내 세계 무대로 진출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02-2204-1041.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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