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히로히토악몽」서 벗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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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히로히토」 일본국왕의 죽음은 우리국민에게 단순한 이웃나라 왕의 죽음과는 다른 특별한 감회를 갖게 한다. 그의 재세63년중 초기19년간 그는 식민통치의 절대 지배자로 우리민족 위에 섰었기 때문이다. 50대 이상의 사람이면 누구나 다소간 그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다. 절대 지배자를 넘어 그는 하나의 신이었다.
일제식민통치 기간의 절반이 넘는 소화시대는 철저한 한민족 정신의 말살을 그 특징으로 한다. 「히로히토」의 존재는 한반도의 도성과 길거리뿐 아니라 각 가정과 개개인의 마음속에까지 파고들려는 무소부재한 실재였다.
우리나라 각처에 신궁과 신사를 세워 참배을 강요했으며 각 가정마다 신사의 축소판인 신붕을 설치해 조석으로 예배하게 했다. 각급학교와 단체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일왕이 사는 궁성을 향해 절을 시켰다. 황국신민의 서사라는 것을 만들어 학생을 비롯한 남녀노소에게 수시로 낭독하도록 강요했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우리말의 교육과 사용을 금지했으며 창씨개명이라고 해서 「성을 가는」 못할 짓 마저 시켰다.
우리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뿌리뽑아 버리려는 「황민화」 시책을 철저히 시행했던 것이다. 이 모든 시책은 「히로히토」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그뿐아니다. 징병과 징용제에 의해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연인원 6백만명의 우리 청장년 남녀가 전장과 강제노동현장으로 내몰렸다.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으나 그 정확한 통계 마저 나와 있지 않다. 징병·징용으로 동원되지 않은 사람도 일제의 가혹한 식민착취와 전쟁기간중의 공출로 대부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고통을 겪었다.
한국의 식민지화로 첫발을 내디딘 일제의 팽창주의는 「히로히토」시대에 접어들어 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으로 치달아 결국 스스로의 묘혈을 파게 된다.
자기네 묘혈을 판것은 자업자득이겠으나 그 과정에서 애매한 우리나라가 남북분단의 비극을 맞게 된다. 결국 그는 전쟁발발 책임뿐 아니라 한민족 분단의 책임까지 피할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히로히토」의 이름은 일제의 혹독한 식민통치와 함께 우리에게는 악몽의 역사로 남아있다.
이러한 악몽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인색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때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 84년 9월 전두환대통령의 공식방일 만찬회에서 『금세기의 한시기에 양국간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한게 고작이었다. 아무리 외교적 수사라고는 하지만 그 불행을 일으킨 쪽이 누구인지 조차 얼버무린 지극히 부실한 유감표명이었다.
그러나 새삼스럽게 지금 사과의 부실함을 문제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일제식민지배의 그 가혹했던 역사와 그 시대의 상징인 「히로히토」가 결코 우리의 뇌리에서 지워질수 없음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지난 72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일본공식방문이 발표된 적이 있었다. 그때 외무부 담당기자로서 우선 떠오르는 걱정은 「히로히토」가 한국답례방문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걱정은 유신으로 박대통령의 방일이 취소돼 기우에 그쳤다. 지난 84년 전대통령의 방일때도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그의 건강때문에 답방은 「아키히토」 왕세자가 할 것이라고해서 그 정도라면 별일 없지않겠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70년대나 지금이나 한일관계는 구원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도 꼬리를 잇고 있는 피해의 역사를 잊을수야 없지만, 보다 나은 미래의 양국 선린관계를 위해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고 지배자로 우리민족에 군림, 일제 식민통치 질곡의 상징이었던 「히로히토」에 대해서만은 감정의 응어리를 극복하기가 어려운게 부인할수 없는 우리의 국민감정이다. 단순히 이웃나라 국왕으로 심상하게 넘기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로히토」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한일관계와는 별개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지금의 한일관계정도의 긴밀한 국가간에서라면 현직 국가원수가 서거했을때 상대국가원수가 조문하러 간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게 일반론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히로히토」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감정상 도저히 일반론이 통용될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정부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도 처음부터 대통령의 「히로히토」 장례식 참석가능성은 분명히 배제하는게 좋을듯 하다. 「히로히토」의 죽음으로 한일관계는 오히려 과거의 부담과 감정적 응어리에서 벗어날수 있는 한 계기가 마련된 측면이 있다. 그를 이은 아들 「아키히토」는 우리와 특별한 악연도, 유별난 감정도 없다. 이제 일본은 아직까지 미해결의 유산으로 남아있는 재일동포의 법적지위등 여러문제에 대해 과거청산차원에서 보다 성의있게 나와야 한다.
우리족도 과거의 응어리를 풀고 정치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보다 당당하게 일본을 대하는게 좋겠다.
그렇게되면 「히로히토」의 죽음을 계기로 한일관계는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 보다 건강한 관계로 나아갈수 있을 것이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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