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와해' 32명 무더기 기소…檢 "다른 계열사도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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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50)씨는 전 처에게 문제가 있어서 2013년 초에 이혼했다. 이씨는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노조 주동세력으로 포섭될 뻔했으나 ‘엔젤 요원’의 설득으로 더는 핵심 노조원과 연락하지 않는다."

검찰이 27일 밝힌 삼성전자서비스 인사팀이 관리한 문건의 내용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들이 노동조합 조합원들 모르게 결혼·이혼 여부, 임신 등 건강상태, 채무 등 재산상태 등의 개인정보 수백 건을 수집하고 노조 탈퇴를 회유하는 데 사용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이 사건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주도한 조직적 범죄라고 판단했다.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포함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수현)는 이상훈(63)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32명을 한꺼번에 재판에 넘겼다. 목장균(54) 전 삼성전자 노무담당 전무 등 4명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하고, 이 의장 등 28명과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 법인은 불구속기소했다고 27일 발표했다.

27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김수현 공공형사수사부 부장검사가 삼성그룹의 노조와해 공작 수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김수현 공공형사수사부 부장검사가 삼성그룹의 노조와해 공작 수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이날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삼성은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그룹 차원의 ‘무노조경영’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그룹 미래전략실이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노조 와해 공작을 했다”며 “회사 사정에 맞는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을 기획하고 신속대응(QR)팀을 설치해 체계적인 작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설립 움직임이 본격화된 2013년 6월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 주도로 종합상황실이 꾸려지고 신속대응팀이 설치됐다. 검찰은 노조 설립 저지, 노조탈퇴 유도 등을 뜻하는 '그린화' 전략은 삼성전자를 거쳐 삼성전자와 협력업체에 전달돼 실행됐다고 설명했다.

협력업체 폐업하고 조합원 재취업 방해 

삼성은 '그린화' 전략과 삼성전자 본사 직원으로 구성된 신속대응팀을 중심으로 조합원 임금을 삭감하고 협력업체를 폐업하거나 조합원 재취업을 방해하는 공작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확보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작성 문건에는 ‘노조가 생기고 나면 와해시키기 어렵고,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만큼 사전예방만이 최선’이라는 문구가 적시됐다.

검찰은 또 "삼성이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의 노조전문가인 송모씨와 월 2000만원, 성공보수 6000만원의 고액 자문료 계약을 맺어 올해까지 약 13억원을 지급하고 각종 노조와해 전략을 자문받아 실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검찰은 노조 와해 공작의 ‘윗선’을 이 의장이라고 결론냈다. 이 의장이 2012년 1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을 지내면서 그룹 미래전략실의 각종 의사 결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의장이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거나 지시받았다는 진술이나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지회장은 “검찰이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을 반헌법적인 범죄라고 발표하고 의혹을 규명한 부분은 고무적이다”라면서도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아무런 개입이나 지시 없이 삼성그룹 전체가 불법을 동원하면서까지 무노조경영을 실행하려고 했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에버랜드 노조활동 방해 의혹도 수사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에 이어 그룹 차원에서 삼성에버랜드의 노조 활동을 방해했다는 단서도 확보하고 지난 17일 에버랜드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삼성의 다른 계열사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그린화 전략' 문건이 다른 계열사에서도 시행됐는지에 대해서 추가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서비스 AS(애프터서비스)센터의 불법파견 의혹이 불거지자 2013년 6∼7월 수시 근로 감독을 벌이고도 같은 해 9월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과 관련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를 조사하는 등 ‘봐주기’ 의혹도 확인하고 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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