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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존재감’ 보이는 이해찬…충청대망론 새 맹주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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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총리가 성질이 좀 더럽거든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인 2008년 10월7일 봉하마을에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한 말이다. (『대통령의 말하기』중) 순간 정적이 흘렀지만 노 전 대통령은 곧바로 “그렇게 대차고 빡센 사람이 없다는 뜻”이라고 추가 설명을 내 놔 다들 웃었다고 한다.

2005년 11월 1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해찬 국무총리(가운데)와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5년 11월 1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해찬 국무총리(가운데)와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당내 최다선(7선)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겐 일은 잘하는 데 성격이 안 좋다는 평가가 많다. 이 대표를 오랫동안 지켜본 당의 한 중진 의원은 “싸가지 정치도 쭉 하면 캐릭터가 되더라. 어찌보면 부럽다. 정치인들은 보통 다 섬기고 숙이고 해야 하는데 이 대표는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밖의 얘기지만 과거 지역구(서울 관악구)에 조폭 조양은씨가 찾아와 “도와줄 게 없냐”고 묻자 “당신이 꺼져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2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부산광역시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2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부산광역시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부동산, 공공기관 이전 등 이슈 주도  

올해 66세인 이 대표는 달라졌을까. 일단 국정 현안을 주도하는 능력은 당내에서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다.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혁신도시 지원 카드를 꺼냈다.

최근 아파트 가격 폭등 국면에선 “아파트로 불로소득을 왕창 벌겠다는 생각은 그만하라”, “투기심리가 계속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 등의 강한 메시지를 연일 제시하면서 당ㆍ정ㆍ청을 이끄는 모습이다. 이번 방북 기간(18~20일) 중엔 평양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면담하기도 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 행보를 놓고 정치권 주변에선 “기세를 몰아 대권에 도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이 대표는 당 정책위의장 세번에 당 대표 두번, 김대중 정부 때 교육부장관, 노무현 정부에선 국무총리를 지냈다. 선수와 이력으로만 보면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치, 국정 경험이 풍부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3일 발표한 조사(8월27~31일)를 보면 범진보층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이 대표의 지지율은 3.0%(9위)로 집계됐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해찬, 충청대망론 바통 이어받나

그러나 이 대표는 현재의 여론조사 지지율 수치를 뛰어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가다. 일단 이 대표는 2020년 총선 공천권을 보유하고 있다. 2년 뒤 대선(2022년)을 앞두고 당내 물갈이를 주도해 대선 경선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그가 충청권 출신(충남 청양)인 점도 정치공학적으로 큰 장점이다. 충청권은 전통적으로 영·호남 대결구도 속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최근 그는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를 제안하는 등 충청 현안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비롯한 다른 충청권 경쟁자들은 대권 경쟁에서 중도 탈락하거나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그가 충청대망론의 후보로 부상할 여건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이 대표는 대권 도전에 대해 손사래를 치고 있다. 지난 달 초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 “과거 ‘나는 대통령 선거에 나가고 싶어도 대중성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 주변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없어 보인다”고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어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섰던 이 대표는 이후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에는 관심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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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가 본격적인 대선주자로 뛰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스스로 말했듯이 부족한 ‘대중성’을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가장 큰 숙제다. 지난 8월 당 대표 경선때도 이 대표에겐 “열성 지지층은 절대적 지지를 보내지만 당의 외연을 넓히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에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냐도 중요하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국민성장론을 들고 나온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토론을 제안하자 “토론도 어느 정도 격이 맞아야 한다”며 거부했다. 또 “앞으로 10번은 더 대통령을 당선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야당을 계속 자극했다.

이에 대해 당 주변에선 “문재인 정부와 이 대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발언 수위를 좀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일훈·김경희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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