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외교관 양성소’ 학자들이 ‘미국 책임론’ 꺼내든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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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여사가 지난 20일 삼지연초대소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여사가 지난 20일 삼지연초대소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뉴스1]

 중국 외교부 산하 대학인 중국외교학원(CFAU)은 중국의 대표적인 외교관 양성소다. 지난 2005년 우젠민(吳建民·66) 당시 총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1955년 국제문제를 다룰 외교관 육성이 시급하다는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의 지시에 따라 설립됐다”고 소개한 바 있다.

중국외교학원 수 하오·링 솅리 교수 인터뷰 #“북·미 비핵화 시각 차 커…미, 대북 제재 해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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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18일 중앙일보는 CFAU를 대표하는 노(老)학자, 신진 학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각 북·중, 한·중 관계 전문가인 수 하오(苏浩) 교수와 링 솅리(凌胜利) 교수다. 중국 신화통신사와 한국 언론진흥재단이 마련한 이날 인터뷰에서 두 교수는 ‘미국 책임론’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지난 남북정상회담(9월 18~20일) 이후 트럼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수 하오 중국외교학원 교수. [조진형 기자]

수 하오 중국외교학원 교수. [조진형 기자]

 이날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수 교수는 “북한이 핵 무기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 북한 정권은 핵 무기 생산만을 목표로 뒀다. 그러나 이제 북한은 경제 지원을 받는다는 가정 아래, 핵 무기 개발을 기꺼이 중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몇 년 간 북한의 핵 무기 개발 및 실험이 국제 사회의 경제 지원을 받아내려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남북정상회담을 세 차례 개최하는 등 실질적 성과를 냈다”며 특히 “판문점 회담 당시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사적인 대화가 (남북 관계 개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짐작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앞서 지난 4월 27일 북측 통일각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진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통일각 도보다리 위를 걸으며 40분 가량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것을 언급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 27일 판문점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지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하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44분간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 27일 판문점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지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하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44분간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반면 수 교수는 북·미 관계가 난관에 봉착됐다고 역설했다. 그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는 판문점 선언에 명시됐지만, 북·미 양국의 싱가포르 합의문엔 언급되지 않았다. 북한과 미국의 시각 차이가 크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또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한 수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에 소극적이다. 마치 북한이 이른 시기에 핵을 포기할 것을 기대치 않는 것 같다”며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등 구체적 조치를 취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응하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북 원조 및 제재 해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지금쯤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문 대통령의 이번 방북은 미국을 향해 ‘행동을 취하라’고 압박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중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냐”는 기자의 질문에 수 교수는 “지난 다롄 회담(5월 7~8일)에서 김정은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비핵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며 또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국으로 대북 제재를 이행한다는 점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 북한은 이웃(중국)을 잃지 않기 위해 비핵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링 솅리 중국외교학원 교수. [조진형 기자]

링 솅리 중국외교학원 교수. [조진형 기자]

 이날 링 솅리 교수는 “두 나라(한국·중국)의 북핵 접근 방식에 이견이 발생한 건 미국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측은 ‘중국이 북한 편에 선다’고 생각하겠지만 거꾸로 중국 입장에선 ‘한·미 동맹이 한국의 자주적 외교 활동을 제한한다’고 여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링 교수는 지난해 한한령(限韓令·한류 확산 금지)으로 이어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논란을 예로 들었다. 그는 “사드 논란은 동북아 안보에 대한 두 국가(중국, 한국)의 시각 차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중·한 관계에 균열을 낸 상징적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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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그는 지난해 ‘중국판 사드’로 불리는 러시아산(産) S-400이 중국 산동성에 설치된 것과 관련해 “일부 한국인은 ‘S-400이 한반도를 겨냥한 것’이라고 오해한다. 이 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해 설치한 것”이라며 “반대로 중국에선 ‘미국이 한국 내 설치된 사드를 (중국을 겨냥해) 발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했다. 수 교수는 “중국과 한국은 서로 입장을 고려해 안보 전략을 조절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수 교수는 “중국과 한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중국)과 신국방정책(한국)을 통해 지역 내 공동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며 “북한과의 협상 메커니즘 역시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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