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동자에게 양보 좀 했다고 죽을 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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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무현 대통령이 중소.벤처 기업 대표 간담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보면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이 내용 중에는 우리 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적절한 지적과 해법도 있었다.

"생산성을 무시한 임금인상은 억제하겠다" "노동운동은 귀족화.권력화되고 있다" 등은 바른 진단이다. "성장 잠재력에 부담을 주는 경기부양책은 쓰지 않겠다"는 말도 옳다.

그러나 뒤이은 발언들을 보면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아직도 이 정도에 머물고 있는가 하는 안타까움도 있다. 정부 출범 때와 비교해 볼 때 대통령의 최근 경제 인식은 비교적 바른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조짐이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나에게 법과 원칙을 강요하지 말라" "정부가 노동자에게 좀 양보했다고 무슨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몰아붙이느냐"는 등의 발언을 했다. 우리는 대통령이 무슨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우리 경제의 핵심 과제는 노사 문제다. 전투적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불법파업, 그리고 '고임금-저효율'구조.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자세가 기업인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기업이 한국을 등지게 만들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인이다.

대화와 타협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법과 원칙, 룰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지 불법에까지 너그러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이 표출될 때마다 기업인과 국민은 불안해지는 것이다.

"인위적 경기 부양은 없다"는 盧대통령의 말처럼 현재 우리 경제가 필요한 것은 돈 더 풀고 금리 내리는 식의 부양책이 아니다. 정부는 비전을 제시하고, 규제를 풀고, 대화에는 너그럽되 불법엔 법과 원칙을 적용하는 정부의 일관된 모습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국민이 믿고 따르고, 경제도 회복될 수 있다. 재계가 지적한 리더십도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누가 시대착오적인 독재의 힘을 주문하겠는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경제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국정 전반에 불필요한 파장을 야기하는 발언은 자제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