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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국회] '다빈치 코드' 판결 환영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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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댄 브라운에 대하여

대단한 논리와 추리력 그리고 극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글재주를 가진 소설가다.

댄 브라운은 자신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오랜 동안 그리스도교가 저지른
무지와 압제와 살상과 학살을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압제적인
그리스도교가 오랜 동안 유린해온 종교와 양심과 표현과 학문의 자유에 대한 실상을
간접적이지만 심도깊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댄 브라운은 예수 그리스도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그 후손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고, 최후의 만찬의 성배가 사실상 막달라 마리아라고
유추하는 등 상당히 비성서적이며 불경스런 이야기를 풀어내려갔다.

소설속의 그와같은 비성서적이고 불경스런 이야기가 댄 브라운의 성서에 대한
무지나 역사상 카톨릭으로 시작되는 그리스도교가 저지런 종교적 압제에 대한 반감
그리고 종교에 의해 침해되어온 일반인들의 생각과 표현의 자유의 보호와 확장을 위해
커다란 화두를 던지기 위한 것이었길 바란다.

하지만 댄 브라운의 추리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서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키기
위한 목적의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것이라면, 그는 결국 그 모든 영광과 영예를 뒤로한 채
고꾸라지고 말 것이다.

2. 서울중앙지법의 이번 기각 판결에 관하여

대단히 훌륭한 판결이다. 한국이 정교가 분리된 나라이며, 특정 종교가 지배하거나
왈왈거리는 나라가 아니라는 중립적이고 공의로운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본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성서에 대한 불경에 손을 들어준 판결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리 추구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고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다 준
명쾌한 판결이다.

하느님은 압제적이고 편파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사물에 대한 판단을 내리길 원치
않으신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가운데 올바른 선택과 판단을 내리길 원하신다.
서울중앙지법은 바로 그 하느님의 공의를 옹호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한기총과 한기총이 동원한 변호사단체를 비롯한
상당한 사회적 압력이 있었슴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이와같은 판결이 내려진 것은
대단한 진전이다. 한국 사법부가 종교와 양심의 자유, 그리고 예술과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집단주의나 특정 세력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공정하고 공의롭고 공평하고 합리적인 판결로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

덧붙이자면 종교적 신념을 침해한다는 것은 물리력이나 정치적 영향력 혹은 잘못된 법으로 개인의

신념이나 신념의 이행을 꺽는 것을 말한다. 영화 다빈치 코드는 다른 견해 혹은 상업적 상상력이지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침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일반인들의 자유와 영화볼 권리를

침해하러드는 쪽은 한기총이다.

3. 한기총에 관하여

오늘날 한기총과 미국 복음주의와 같은 상당수의 기독교 종파나 기독교 협의회들은
모세와의 율법 언약에 있었던 고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이 폐하여진 후의 영적 이스라엘
(그리스도교) 그 둘 사이를 제대로 구분짓지 못하는 심각한 오류를 자주 드러내곤
한다.

이들의 심각한 오류는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처럼 자신들이 세상문제나 세상정치에
참여하여 세상을 바로 잡을 책임이 있다는 다양한 행동과 행태들에서 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은 성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대단한 오해다. 고대 이스라엘은
모세를 중보로 여호와 하느님과의 율법 계약 아래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정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에서 멀어지려 할 때마다 여호와 하느님은
엘리야와 엘리사,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의 선지자와 예언자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왕과 제사장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죄에서 돌이키도록 종용했고, 그들은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면서까지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와 사회문제에 개입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을 돌이키기 위해 파견된 하느님의 마지막 선지자이자
예언자이기도 했다.

그와같은 선지자, 예언자들의 고대 이스라엘에서의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개입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초에 여호와 하느님과 율법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정당하고 당연한 책무였다.

하지만 모세를 중보로하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과의 계약이 파기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하는 영적 이스라엘(그리스도교)과의 새로운 계약이 성립되면서 세상 정치와 사회 문제와
관련된 양상은 매우 달라지게 되었다.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는 특정 민족이나 국가로 구성된 것이
아니었다. 영적 이스라엘의 구성원으로서의 문호는 민족과 언어와 나라와 백성을 초월해
전 인류에게 개방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한 참여는 고대 이스라엘이 그들 내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교 조직 내부에 국한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부여한 사명은 먼저 그들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관련하여 부여한 임무는 단지 성서의 좋은 소식을 좋은 이웃의 입장에서
평화적이고 우호적으로 전파하여 지식을 살펴보고 원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틀맞는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생활을 그것에 맞게 변화시키도록 돕는 그것이었다.

여러 언론과 방송에서 일부 기독교 종교지도자들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와 책임을 정당화하며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은 살펴보신 것처럼 비성서적인 주장이다.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성서의 가르침과 원칙에 맞도록 틀잡고,
그와같은 가치관과 생활로 세상 사람들 앞에서 우수한 모범을 보이는 그리스도교를
원했지, 세상 정치에 깊숙히 개입하여 덩달아 콩나라 팥나라하는 희안한 그리스도교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한기총이 그들의 구성원들에게 그와같은 영화를 보지말 것을 권고하는 것은 성서적으로 볼 때

타당하다. 하지만 사유가 미약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이나 서울 중앙지법의 판결 이후에도 계속

하고자하는 극장 앞의 상영관람반대 시위나 운동은 그들의 한계를 넘어선 월권행위이며 비성서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인 파행일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교는 그들 스스로를 바로잡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경고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4. 소니 픽쳐스와 다빈치 코드 개봉관들에게

한기총의 비성서적인 볼성사나운 상영반대운동과 일반인들에 대한 관람금지 시도가
물리적이거나 상식에 어긋날 정도일 경우, 그것은 명백한 영업방해일 것이다. 물론 그것이
흥행에 도움이 된다면 소니 픽쳐스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만약 소니 픽쳐스가 구지 한기총의 상영관람반대 시위가 걱정된다면 다음과 같은 성구가 적힌
현수막을 각 개봉관들 앞에 내걸길 바란다.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
- 고린도 전서 5장 12, 13절, 개역 한글판

그리고 이렇게 한 문장을 덛붙이면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성경말씀대로 한기총은 교회내부나
신경쓰십시오, 댄 브라운과 소니 픽쳐스와 개봉관들의 불경은 하느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어떠한 부적보다도 한기총의 무지스런 작태를 퇴치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ps. 하느님의 심판을 각오한 댄 브라운과 소니 픽쳐스와 개봉관들의 흥행을 위한 불굴의 용기가

사실상 심각한 불경임을 자유로운 환경과 자유의지로 언젠가 그들 스스로 깨닫길 바라면서...^^

[조인스 디지털국회 / 서종필]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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