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미술|올림픽 미술제 득보다 실이 많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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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8년은 한국미술이 서울올림픽이란 볼록렌즈를 통과하여 「국제화」의 초점에 닿을 다시없는 호기였다. 그러나 반사된 빛줄기들은 각기 굴절이 달라 제대로 된 초점을 형성하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해외미술품 수입자유화 조치에 때를 맞춘 민간화랑들의 외국 작가 유치전·88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의 일환으로 개최된 각종 맘모스 미술전람회는 교류의 측면을 포함한 한국미술의 국제화 가능성을 크게 고조시켰다. 적어도 일부 구미유학생 그룹에 가냘픈 파이프를 잇대고 있었다는 점을 빼고는 완강하게 쇄국주의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던 한국미술로서는 가위 「혁명적」이라고도 할 변화였다. 그러나 미술의 국제교류가 형평을 잃고 일방적으로 입초현상을 보였다는 점이 시급히 개선돼야할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우리 것을 들고 나가 외국인들에게 소통. 시킬 기회는 전혀 확보하지 못한채 외국작가의 작품만이 밀고 들어와 국내의 각종 관·민 전시회를 휩쓸었다. 『한마디로 밑져도 한참 밑진 장사였다』는 것이 많은 미술인들의 평가였다.
물론 이들 외국작품을 유치해온 전시회 주최자들로서는 바깥사정에 어두운 국내미술계에 세계현대미술의 현주소와 동향을 주지시킨다는 나름의 긍정적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작가나 작품선정이 안목 없이 매우 무분별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오히려 해외미술 실상의 소개에 실패했다는 지적이었다. 이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쪽으로서는 감수해야할 불가피한 시행착오였는지도 모른다.
올해 한국미술계를 둘러싸고 인 최대의 이슈는 올림픽미술제였다. 올림픽미술제는 두 차례의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 및 국제야외조각초대전과 국제현대회화전이란 2개의 축에 한국현대미술전을 양념으로 끼워 넣고 열린 사상 최대규모의 전시행사였다. 조각의 경우 심포지엄과 초대전을 합쳐 총80여개 국에서 1백90여명이, 회화쪽에서도 60여개 국에서 무려 1백60여명의 저명 작가들이 참여했다.
이들 참여작가 대부분은 출품작들을 한국에 영구 기증함으로써 올림픽조각공원과 같은 기념비적 예술자산을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의 빈약한 소장가짓수와 내용을 크게 살찌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행사는 전시회 조직과정에서 드러난 관료주의, 자기비하와 사대로 점철된 비주체적 운영으로 큰 흠을 남겼다.
특히 한국화와 구상계열작가들을 소외시킴으로써 발단된 올림픽미술제 저지 움직임은 운영위 측의 편향성 자체가 한국미술이 안고있는 구조적 모순과 깊이 관련돼있다는 점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7월1일 정부에 의해 발표된 해외미술품수입개방조치는 우리의 경제력성장과 문학의 국제화추세에 따른 불가피한 대응이었다. 당초에는 이 조치가 세계미술품의 하치장으로 화했던 일본의 전철을 밟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게 했으나 수입허가에 얽힌 까다로운 절차 등으로 아직은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공산권과의 교류허용, 납·월북작가 해금이라는 개방 분위기를 타고 낯선 북방미술이 우리의 정면에 나섰다는 점도 올해 한국미술계가 특기해야할 사건이었다. 올림픽미술제에 소련을 비롯한 동구공산권 작가들이 다수 참여한데 이어 중국현대화 특별전·중국농민화전·소련현대미술전 등 북방미술의 단면을 알리는 민간차원의 기획전시회가 줄을 이어 열렸다.
관주도의 올림픽공식미술행사에 가려 개인전·그룹전을 포함한 여타 전시회는 제대로 주목받지도 못한채 의례적인 것으로 넘어가 버렸다.
다만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물이 되어 고통과 오욕의 삶을 이어가는 아프리카민중들을 주제로 50m가 넘는 캔버스 위에 새로운 대하형식의 그림을 선보인 임옥상의 「아프리 카 현대사전」은 그 의식의 치열함과 드문 야심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미술인구가 크게 늘어난 현실을 반영, 올해는 화랑신설을 비롯한 전시공간의 대폭적인 확대가 두드러진 한해였다.
금년 들어 인공화랑·아나갤러리·나우갤러리·시공화랑·갤러리현대·서미화망 등 20여개의 화랑이 새로 문을 열었고, 인사동쪽의 선화랑·표화랑·진화랑·수화랑 등이 강남에 분점을 차렸다. 이들 화랑은 인사동 및 사간동·동숭동 강남일대로 전시공간과 상권을 분화하면서 각기 특색 있는 기획전들을 통해 미술시장의 다변화를 꾀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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