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잘못하면 노동형" 北, 9·9절 취재 외신에 가이드라인

중앙일보

입력

김정은이 2013년 7월 27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기념 열병식 및 평양시군중대회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이 2013년 7월 27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기념 열병식 및 평양시군중대회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9·9절) 행사 취재를 위해 방북한 외신 기자들에게 행동 규제 내용을 담은 보도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는 북한 당국이 6일 평양에 도착한 외신 기자 130여 명에게 ‘북한 영토에서 외신 기자들의 행동 규정’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나눠줬다고 보도했다. 문서는 외신 기자들이 9·9절 및 관련 행사를 취재·보도할 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담고 있다고 NK뉴스는 설명했다.

문서에서 외신 기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대표적 일은 ‘북한의 실상을 왜곡(distort)해 보도하는 것’으로 돼 있다. 또 외신 기자들은 ‘적대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잘못된 보도를 생산하는 데 북한에서의 시간을 쓰지 말 것’이라는 주의도 받았다고 NK뉴스는 전했다. 외신기자들은 또 ‘북한 주민들의 생활 양식과 풍습을 존중해야 하며, 북한과 다른 국가 간의 관계 발전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도 받았다.

NK뉴스는 “북한 당국이 기자들에게 해당 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보도 가이드라인 격으로 제공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서에는 북한 형법 62·64·65·67조와 231조, 282조의 내용도 설명돼 있었다. NK뉴스는 “해당 법령은 북한에서 반국가 선전·선동을 할 경우 5년 이상의 노동 교화형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NK뉴스는 “해당 문서는 2년 전에 작성된 것으로 날짜가 돼 있지만, 지난해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생일) 행사 취재차 북한에 왔던 NK뉴스 기자들은 이런 문서를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북한 당국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의식, 외신 보도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은 또 6일 오전 미국 기자들만 데리고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평양 지하철, 개선문, 만수대 창작사 등을 둘러보는 투어를 진행했다고 NK뉴스는 전했다. 만수대창작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대상이다.

한편 9·9절 열병식 때 북한이 선보일 무기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무력시위용 대형 탄도미사일이 등장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미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의 앤킷 판다 선임 에디터는 데일리비스트에 ‘김정은의 열병식은 트럼프의 주의를 일깨울 신호(wake up call)’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9·9절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지속적인 의지를 두 눈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는 유예했어도, 그 능력을 뽐내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올해 열병식은 북한이 주장한 대로 충분한 ‘핵 억지력’을 보유했다는 많은 증거를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밝힌 ‘탄두 대량 생산’ 지시가 잘 수행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미국과 북한은 근본적인 이슈에서 의견이 다르다. 북한은 자신만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동의한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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