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선의는 선의로 봐 주면 좋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일 특사단을 만났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특사단 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6일 설명한 방북 결과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언어가 통하는 특사단에 미국에 대한 ‘불만’과 ‘손짓’을 동시에 표현했다. 이번에도 김 위원장이 거침없이 얘기한 것 아니냐는 대북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은 자신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고 여러 차례 분명하게 천명하고 강조했다”며 “자기(김 위원장)의 의지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이) 비핵화에 필요한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실천해 왔는데, 이런 선의(善意)를 선의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 세 번째)을 수석으로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단이 5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 세 번째)을 수석으로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단이 5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정상회담 일정, 의제 일사천리 합의 #비핵화 "우리는 먼저 움직였는데..." #김정은 "국제사회의 평가 인색해 어렵다" #"누구에게도 트럼프 대통령 험담 안해"

정 실장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최근 북한이 했던 각종 조치를 조목조목 열거하며, 미국의 상응 조치를 요구했다. 북한은 비핵화 행동에 나섰는데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불만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24일 외신기자들을 불러 공개적으로 폭파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경우, “갱도의 3분의 2가 붕락(붕괴)돼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북한이 해체한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은 “북한의 유일한 실험장일 뿐만 아니라, 향후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완전히 중지하겠다는 뜻”이라고도 했다.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시설을 철거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실험 중단을 미국에 약속한 게 된다. 김 위원장은 “매우 실천적이고, 의미 있는 조치들인데 국제사회의 평가가 인색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했다. 자신의 진심을 한국이 대신 미국에 전달해 달라는 하소연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정 실장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도 약속했다. 정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절단 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5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절단 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5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북한 최고 지도자의 발언이 이처럼 구체적으로 공개된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정 실장이 해당 발언을 언론에 공개해도 좋다고 사전에 남북 간 조율이 이뤄졌을 것으로 관측되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이 특사단을 통해 국제사회, 특히 미국에 공개 메시지를 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한ㆍ미동맹 약화,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 하는 주장들은 종전선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 아니냐”며 종전선언과 관련한 한국 사회 및 미국의 의구심에 대한 입장도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기로 했는데,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북한은 그간 대외적으로 ‘싫으면 말라. 우리 식대로 간다’던 태도를 고수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기대감을 빼놓지 않았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신뢰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최근 북·미 협상에 다소 어려움 있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신뢰는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자신의 참모는 물론이고 그 누구에게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특히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외부 비판에 민감한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해 대단히 ‘예우’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알려달라는 주문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 “가짜 뉴스”라고 공격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했다. 또 지난달 하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취소한 뒤에도 “(김 위원장과) 환상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며 “미국은 북한과의 외교적 노력에 있어 잘하고 있다”(지난달 29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한 답신일 수도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