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만의 특사방북, 김정은 면담 성사에 회담 성패 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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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 특사단의 방북은 지난 3월 5일 이후 꼭 6개월 만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단장을 맡은 특사단은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등 이전 그대로다. 특사단은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노동당 청사(본청)에서 4시간 동안 만나 4월 말 정상회담 개최, 정상 간 핫라인 설치, 북한의 비핵화 등 6개 항에 합의했다.

평창 겨울 올림픽으로 조성된 남북관계 훈풍의 모멘텀을 이으면서 남북관계 진전의 결정적 역할이었다. 또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중재자 역할도 톡톡히 했다. 당시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연이어 방한해 남북이 어느 정도 협의가 이뤄진 뒤였다. 정답이 어느 정도 정해진 상황에서 특사단이 방북한 것이다.

지난 3월 5일 방북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이 노동당 본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 위원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5일 방북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이 노동당 본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 위원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사진=연합뉴스]

이에 비해 이번 특사단의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은 분위기다. 북한의 비핵화 지연으로 북·미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된 데다, 남북이 합의한 사안들에 대한 이행 속도에 북한이 잔뜩 불만을 가지고 있어서다. 중국이나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참여하면서 방정식은 더 고차원이 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특사단의 임무를 “정상회담 일정 확정과 남북관계, 북·미 관계 전반”이라고 설명했다. 6개월 전과 특사단의 역할은 같지만, 성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당일치기로 평양을 찾는 특사단의 성과는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수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북한 체제의 속성상 현재의 교착국면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김 위원장이기 때문이다. 최고지도자가 나서면 뭔가 ‘선물’을 내놓거나 진전이 있었던 경험도 있다. 김 위원장은 3월과 5월, 문 대통령의 특사단과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 각각 정상회담과 미국인 억류자들을 풀어줬다.

반면, 특사단의 방북을 수용하면서도 김 위원장이 나서지 않는다면 일단 ‘황색등’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특사가 평양을 방문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나지 못했다”며 “핵 문제와 관련해 진전된 협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쑹타오 대외연락부장)도 현지지도 일정을 이유로 만나지 않았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특사라고 하더라도 김영철 부위원장 등이 특사단의 보따리를 먼저 확인해 보고한 뒤, 면담 결과 큰 성과가 있을 경우에만 김 위원장이 나서는 패턴이다. 무엇보다 최근 남북 실무진들의 협의는 공전을 거듭하고 있어 양측의 최고지도자들이 등판하는 두괄식 해법에 나섰다는 의미여서 그가 일정상의 이유 등으로 특사단을 만나지 않는 건 뭔가 만족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잠행이 길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달 20일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서 열린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의 영결식에 참석한 뒤 14일째 모습을 감췄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잠행이 길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달 20일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서 열린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의 영결식에 참석한 뒤 14일째 모습을 감췄다. [사진=조선중앙통신]

특사단과 김 위원장의 면담 여부는 3일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김 부위원장이 특사단을 먼저 만나 문 대통령이나 미국의 메시지, 특히 북한이 명운을 걸고 미국과 담판에 나선 상황에서 종전선언 등과 관련한 입장을 사전에 확인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0일 이후 14일째 공개활동을 중단한 채 전략수립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지난해까지 김 위원장이 열흘 이상 모습을 감춘 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행동에 나섰다”며 “올해는 ‘담판’이나 협상을 앞두고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특사단을 만나기 전 17일 동안 모습을 감췄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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