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가 바뀌지 않으면 개각 큰 의미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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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방·교육부 등 5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했다. 청와대와 총리실의 업무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고용노동·여성가족부 장관도 포함됐다. 정부 출범 후 1년3개월이 훌쩍 지난 데다 일부 장관의 무능과 무책임·무소신엔 국민적 공분이 컸던 만큼 오래전부터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개각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국면 전환 아닌 정책 전환 개각 되려면 #국정 운영 시스템 바꾸는 계기 삼아야

문제는 정책 쇄신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개각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은 선의의 정책 목표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성적표로 나타났다. 더는 오만과 독선으로 밀어붙일 계제가 아니다. 이제라도 정책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핵심 경제 라인은 모두 유임됐다. 기존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일자리 재앙을 부른 정책들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 그저 장관 몇 사람 바꾼다고 국정에 활력이 붙고 시들어가는 경제가 살아날 거라고 믿기는 어렵다.

게다가 문 대통령이 혁신 동력을 살려 국정을 운영하려면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적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 협조가 없다면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내각에 꼭 야당 인사가 포함돼야 협치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협치 정신을 살리는 데는 그만한 카드도 없다. 그럼에도 이번 개각엔 협치와 탕평을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존재감 없다’는 평가를 받는 내각이다. 주요 부처가 아니면 장관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다. 국정을 꾸려가는 무대 위에 장관은 보이지 않고 그저 청와대만 있을 뿐이다. 장관 중심의 국정 운영은 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지만 그대로 지켜진다고 보는 국민은 드물다. 장관들이 대통령 지시 사항이나 받아 적는다며 ‘받아쓰기 내각’으로 비난하던 지난 정권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셈이다.

장관 교체가 단순히 사람만 바꾸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정부 정책 전반을 점검하고 부작용을 바로잡는 정책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 경제를 살릴 수 있도록 국정 운영의 틀을 새롭게 짜고, 거기에 맞는 진용으로 정비해야 한다. 정부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려면 더 폭넓은 개각, 추가적인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구호나 슬로건이 아닌 정책으로 승부하고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개각을 계기로 적폐 청산 드라이브와 같은 과거 집착형 국정 운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대내외적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경제 위기를 돌파하려면 정부가 국정 운영에서 이념을 배제하고 실사구시를 실천해야 한다.

청와대 주도가 아니라 내각이 더 적극적으로 뛰게 만들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내각에 긴장감을 불어 넣고, 장관들이 성과로 평가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단지 사람을 바꾸는 개각이 아니라 정책과 국정 운영 시스템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청와대가 바뀌지 않는다면 개각은 큰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