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한국 좋아하나 북한 눈치본다."|크렘린의 한반도 줄타기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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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련은 한국문제에 대해 노회한 줄타기 입장에 있다. 소련은 한국과의 경제관계확대와 동맹국인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두 가지 국가이익을 만족시키는 아주 복잡한 노선을 찾아야 한다.
소 학자들은 한국과의 관계발전을 『중단시킬 수 없는 세계적 발전의 한 과정』으로 보고 이것이 없으면 경제안정이나 국가간의 더 높은 신뢰를 창조해 낼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잠재력을 이용하려는 의욕은 북아시아의 권력구조와 동맹국 북한을 자극치 않으려는 의도 때문에 위축돼 있다.
중국솜씨 부러워 소련은 최근 한국과의 외교관계수립을 발표한 헝가리주재대사를 소환해 노여움을 표시한 북한의 반응에 유의하고 있다.
이는 비슷한 조치를 취하려는 다른 공사국가들에 하나의 경고로 보인다.
소련은 서울과 영사관계 수립문제를 논의하지 않았고 가까운 장래엔 서울에 상공회의소 사무소 설치에만 국한할 것 같다.
이는 이론상 비 정부기관이지만 직원의 대부분은 대외경제관계성 소속이다.
소련은 중국이 두개의 한국을 다루는 솜씨를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정치와 경제분리정책을 쓰고 있고 소련도 이를 따를 것이다.

<조속한 통일 희망>
그러나 소련은 북한경제를 지원하는데 주요역할을 계속할 것이고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와 전투기가 존재하는 한 김일성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소련은 안보를 중시하고 이를 한국통일과 연결시키고 있다. 한 한국전문가는 『곧 한국통일이 이뤄질 것이고 소련은 그것이 더 빨라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조속한 통일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비관했다.
소련의 한국관측통들은 소련이 대북한영향력의 지렛대를 갖고 있지만 북한에 변화를 강요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조성을 선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남북한·미국간의 3자 회담과 주한 미군철수 등 북한의 평화 이니셔티브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소련의 열망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의 개선으로 남북한간의 불가침선언은 현실적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소련관측통들은 보고있다.
김정일 능력 회의
북한은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골치 아픈 동맹국이다. 소련은 김일성과 후계자로 선정된 김정일에 대해 신중하지만 체제의 급격한 변화에 별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 한 관측통은 김정일의 통치능력에 회의하면서도 그가 권력을 이양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은 이미 북한의 정치·경제·군사문제를 다루고있기 때문에 그의 집권 후 큰 정책의 변화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북한을 잘 아는 소련인들은 장기적으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느끼고있다.
우선 외화를 벌기 위해 선진국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늘고 있고 이들의 사고가 바뀌고 있다.
또 다른 요인은 북한의 매우 어려운 경제적 입장이다.
에너지 자원과 천연자원이 고갈되어 가고 농업상황은 재앙에 가깝다. 인구는 식량증산보다 더 빨리 증가하고 있다. 이미 안전수준을 넘은 화학비료가 사용되고 있다.
대외무역의 개혁이 있었지만 국내경제정책은 여전히 중앙 집중적이다. 위로부터 지시가 내러가고 당이 기업을 좌지우지한다. 음식·옷·비누 등은 배급제이기 때문에 실제 시장에 나온 것은 별로 없다.

<합작설립 애먹어>
지난 수년간 소련의 대북한원조와 차관은 급격히 늘었다. 그러나 소련은 자신의 경제문제와 씨름하게 됨에, 따라 연기시켜준 차관의 환수를 고려하고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북한의 수출잠재력은 매우 좁다고 한 소련경제학자는 말한다.
두 나라의 경제체제가 점차 달라짐에 따라 북한과의 합작기업 설립도 쉽지 않다.
지난 2년간 북한의 대소무역적자는 크게 불어나 87년 상반기 2억6백만 달러였던 것이 88년 같은 기간엔 5억5천5백만 달러로 거의 3배나 늘어났다.
소·북한무역은 2000년까지 소련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 기간 중 경제·기술협력계획에 따라 북한이 소의 극동개발에 참여함으로써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북한은 소의 식량증산과 건설사업에 노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북한에 합작·공작기계건설이 계획되고 있다.

<극동개발에 협력>
평양에 대한 유보적 태도와는 달리 소련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매우 온화하다. 한 학자는 『우리는 이제 자연스런 동반자다. 서로 상이한 것들이 우리를 보완관계로 만들고 있다』 고 말한다.
소련은 미국과 일본이 소련과의 거래를 주저하고 있는 반면 한국인들은 이를 좋은 것으로 믿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소련은 극동에 경제특구를 창설하는데 한국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자기네 스스로 이 특구를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소련은 한국에 석유와 석탄의 주요공급자가 될 수 있다. 천연자원의 공동개발이 협력의 첫 장이 될 것이다.
한 소 협력은 초기단계다. 소련은 언제 서울에 상공회의소사무소 문을 열게될지 말하려 않는다. 그러나 한국이 곧 블라디보스토크나 모스크바에 무역사무소를 열고 소련은 공식관계를 피하면서 중국을 따를 것이다. 【모스크바FEER=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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