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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밥솥이 숙원 사업?" 쌈짓돈 거부한 지방의원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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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 공무원노동조합연맹은 지난 23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의회는 의원들이 선거를 의식해 선심성 예산으로 활용한 재량사업비(주민 숙원사업비) 부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전북도 공무원노동조합연맹은 지난 23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의회는 의원들이 선거를 의식해 선심성 예산으로 활용한 재량사업비(주민 숙원사업비) 부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경로당에 밥솥 놓고, 냉장고 설치하는 게 과연 주민 숙원 사업인가요.”
충북 청주시의회 박완희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4명과 정의당 이현주 의원은 최근 “주민숙원사업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불투명하게 집행했던 ‘지방의원 재량사업비’를 폐지하자는 주장으로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의장단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박완희 청주시의원 등 5명 “주민숙원사업비 안받겠다” 파격 선언 #불투명한 '지방의원 재량사업비' 편성 관행은 여전

26일 청주시에 따르면 올해 시의원 한 명당 1억5000만원씩 모두 58억원의 주민숙원사업비를 집행한 데 이어 새로 선출된 의원들을 위해 5000만원을 추가 편성했다. 박 의원은 “의원들 입맛에 맞는 지역구 민원 사업을 검증 절차 없이 집행하는 지금의 주민숙원사업비 활용 방식은 옳지 않다”며 “읍·면·동에 있는 주민참여예산 위원들과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업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심성 예산, ‘의원 쌈짓돈’이란 오명을 받는 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 편성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방의원 주민숙원사업비는 과거 ‘재량사업비’로 불렸다. 현지 사정에 밝은 지방의원에게 일정 금액을 균등하게 배정, 마을 환경 개선이나 보수공사 등에 쓰라는 취지다. 하지만 의원 재량에 맡겨 사업 선정이 이뤄지다 보니 특정 마을에 편중되거나 이권개입 등 문제가 생겼다.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의회의 역할을 왜곡시킨다는 지적도 있었다.

청주시의회 본희의장.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 뉴스1]

청주시의회 본희의장.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 뉴스1]

청주시의 경우 2014년 재량사업비를 폐지했지만 의원들 불만이 잇따르자 주민숙원사업비로 이름을 바꿔 배정하고 있다. 의원 한명당 연간 1억5000만원씩 돌아가는데 사업내용 자체가 재량사업비와 거의 유사하다. 하우동 청주시 예산팀장은 “주민숙원사업비는 지역구 의원들의 요구서를 받아 집행하고 있다”며 “통상 재량사업비라 불렀던 ‘소규모지역가꾸기’ 예산은 용처를 정해주지도 않고 의원들이 필요할 때 쓰라는 식이었다. 지금은 개별 사업별로 요구서를 받고 있으니 재량사업비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영경 청주시의회 의원은 “의원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예산편성 과정은 민주적인 절차에도 맞지 않고 행정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며 “사업내용이 적합하더라도 주민들이 참여하는 상향식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량사업비는 지금도 공공연하게 집행되고 있다. 전남도의 경우 최근 도의원들로부터 1인당 2억원 범위 안에서 농로 포장 등 소규모 지역 개발 사업 내용을 제출받아 모두 116억원 규모의 재량사업비를 추경안에 반영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재량사업비란 이름으로 지방의원을 위한 사업예산을 만들지 않지만, 재원조정교부금의 일부를 특수시책이나 현안해결 사업비로 지원하고 있다. 전북도의회의 경우 재량사업비 부활을 논의하면서 시민단체와 공무원노조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한 전직 시의원은 “마을별로 그때그때 발생하는 현안해결 차원에서 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는 필요하다”면서도 “표를 의식한 지방의원들이 생색내기용으로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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