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잠결에 전화로 욕설 퍼붓던 이웃, 아침에 한 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40)

시골에 살 때 이웃에 젊은 새터민 부부가 이사와 살았다. 일도 얼마나 재바르고 말도 어찌나 재미있게 하는지 북한에서 살던 눈물 나는 이야기인데도 배꼽을 잡고 웃곤 했다. 우리 두집 남편들은 같은 성씨라고 형님 아우 하며 지냈다.

북한에는 &#39;심화비판 교육&#39; 이라는 시간이 있다. 심화비판 교육이란 그동안 맡은 일에 대해 잘못 했던 일을 양심적으로 비판한다. 교육 시간이 끝나면 서로 위로해 주며 털어내는 시간이다. 사진은 붓글씨 배우는 북한 어린이.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북한에는 &#39;심화비판 교육&#39; 이라는 시간이 있다. 심화비판 교육이란 그동안 맡은 일에 대해 잘못 했던 일을 양심적으로 비판한다. 교육 시간이 끝나면 서로 위로해 주며 털어내는 시간이다. 사진은 붓글씨 배우는 북한 어린이.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북한에선 ‘심화비판(?) 교육’이란 시간이 때맞춰 한 번씩 돌아오는데, 그동안 맡은 일에 대해 양심적으로 생각했을 때 잘못 한 것을 서로 비판하며 더 잘되게 한다는 것이 취지였단다. 그게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하면 괜찮은데, 남을 비판해야 하는 거라 이웃끼리 서로 함께한 정이 있어서인지 그 시간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새터민 “북한은 사람 사는 정이 있어 좋아”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연구한 것이 이번엔 누가, 다음엔 누가 이런 식으로 비판을 받을 당번을 정해 그 전날 그 사람에 대한 비판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연습하는 동안 순번이 된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강하고 아프게 비판하는 연습을 하고, 끝이 나면 서로 끌어안고 엉엉 울고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단다. 그리하면 다음 날 교육시간이 되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의 실생활은 뉴스와는 다르게 사람 사는 정이 있어 좋았단다. 하지만 배고픈 건 못 참아 온갖 위험한 장애를 넘고 넘어 남한에 오니 이번엔 모든 게 풍족하고 다 좋은데 이웃 간의 사랑이 너무 없고 대화도 없어 그것이 가장 서먹하고 어색하다고 했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의 로망은 마당에 강아지가 뛰어놀고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중앙포토]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의 로망은 마당에 강아지가 뛰어놀고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중앙포토]

내가 새터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선 이웃 간의 정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내가 이사해온 이곳도 작은 시골 급이라 20여 가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의 로망은 마당에 강아지가 뛰어놀고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당연히 우리 집에도 집들이 선물로 강아지가 들어오고 그놈이 커 성견이 되니 목소리도 커졌다. 집을 지켜주고 나를 보호해주는 역할로는 참 좋지만 모든 사람이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싶다.

어느 날 옆집에 사는 분이 놀러 왔다. 조용하게 살고 싶어 이사를 왔는데 이웃의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이다. 개는 한 놈이 짖으면 다른 놈들도 다 같이 우렁차게 합창을 하는 버릇이 있다. 한밤중에 짖어대면 나도 짜증이 나 개를 쥐어박기도 한다. 내가 이 정도니 개를 안 키우는 이웃은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그리고 개를 키우게 되면 짖는 소리에 둔해져 별로 안 시끄럽게 들리는 것이 문제다. 그분도 새로 이사 온 옆집에 말하자니 이웃 간에 섭섭해할 것 같고 안 하고 살자니 화가 생겨 나에게 먼저 말한다고 했다. (나는 다행히 길 건너 집이다.)

같이 사는 남편 목소리도 때론 듣기 싫은데 남의 개 짖는 소리는 말하나 마나다. 화도 나고 심하면 우울증도 걸릴만한 상황이다. 그분의 화를 풀어주는 방법이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한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전에 새터민네가 말한 그 이야기다.

이웃에게 개 짖는 소리 화풀이 내게 하라고 부탁  

그 이웃에게 말했다. 그 기분을 알겠으니 언젠가 우리 집 개가 짖거든 나에게 화풀이 겸 소리라도 질러 화를 풀라고. 난 이해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우리 집에도 큰 개는 잘 안 짖지만 작은 개는 앵앵거리는 목소리도 수시로 짖어대, 미안함에 그렇게 말하고 헤어졌다. 그러고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분에게 잘 짖는 개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그곳은 산속이라 잘 짖는 개가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조용한 시골 동네에서 새벽에 개가 짖는 것은 이웃에게 큰 피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송미옥 씨는 이웃과 사전에 대화를 했던 터라 새벽에 개가 짖은 일로 이웃간의 감정 상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중앙포토]

조용한 시골 동네에서 새벽에 개가 짖는 것은 이웃에게 큰 피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송미옥 씨는 이웃과 사전에 대화를 했던 터라 새벽에 개가 짖은 일로 이웃간의 감정 상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중앙포토]

어제 새벽 잠결에 전화벨이 울려 받으니 이웃집이었다. 새벽에 개가 짖는다며 마구마구 욕을 해댔다. 어찌나 세게 욕을 하는지 대꾸도 못 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낮엔 너무 더워 일을 못 한 일꾼이 헤드 랜턴을 머리에 달고 고추를 따고 있었다. 개는 자기 임무를 잘한 건데.

새벽부터 욕을 먹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그런데 기분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다. 미리 대화한 터라 그냥 웃음이 나왔다. 집 밖에서 큰 목소리로 하는 통화여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들었을 것이다. 그날 아침 동네 주위를 다녀보니 개 주인들은 개들에게 교육을 시키느라 조용한 법석을 떨었다. 그러고는 나에게도 밤에 이웃의 고함을 들었냐고 물어왔다.

이웃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벽에 옥상에 올라가 소리소리 지르고 나니 기분이 풀렸어. 하하하. 내가 크게 밥 살게.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역시 대화는 좋은 것이다. 하하.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