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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에세이 50년 … 과거서 교훈을 찾지 마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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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호 31면

책 속으로

그리스인 이야기

그리스인 이야기

그리스인 이야기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살림

일본작가 시노오 나나미 인터뷰 #로마 이어 그리스인 이야기 내놔 #세계 첫 글로벌 제국 탄생 돌아봐 #작가의 일은 해석보다 자료 집적 #두 시대 모두 남성들이 주로 활동 #“가벼운 페미니스트 원하지 않아”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81)의 『로마인 이야기』(전 15권)는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400만 부 가까이 팔렸다. 역사를 현실이 아닌 교양으로 접근한 당대의 변화하는 독서 욕구와 맞아 떨어진 결과다. 그의 또 다른 대작 『그리스인 이야기』가 최근 3권이 나와 완간됐다. 민주주의의 태동지, 세계 최초의 글로벌 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탄생 등을 다룬 작품이다. 시오노 나나미를 e메일 인터뷰했다.(일한 번역=이경덕 번역가)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나.
“교훈을 얻자고 역사를 읽으면 절대 교훈을 얻을 수 없다. 혹시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가볍고 일회적이다. 내 목표는 ‘과거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살았다’는 재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교훈을 얻는다면, 독자의 풍부한 감수성과 열린 상상력 덕분이다. 독자의 독서에 개입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책이 나오면 독자는 바통을 이어받아 골문을 향해 달린다. 자신이 처한 역사에 적용할지 말지, 교훈을 얻을지 말지는 독자가 결정할 일이다. ‘자, 이제부터는 스스로 생각하세요’, 뭐 이런 느낌이랄까.”
그리스·로마 역사가 서구의 성공 비결인가.
“두 민족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기 특질을 충분히 활용했다는 것이다. ‘양(量)’보다 ‘질(質)’로 승부했다. 이 정신이 유럽 근현대사로 이어졌다. 중국·페르시아처럼 ‘양’으로 승부했던 아시아도 이제부터 ‘질’로 승부를 겨룬다면 어떻게 될까.”
시오노 나나미가 일리아드를 들고 있다. 그리스·로마·르네상스 역사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넓히는 작업을 해왔다. 공로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사진 신쵸사]

시오노 나나미가 일리아드를 들고 있다. 그리스·로마·르네상스 역사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넓히는 작업을 해왔다. 공로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사진 신쵸사]

여러 나라의 번영·쇠퇴에 공통점이 있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번영의 요인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쇠퇴한 요인은 서로 다르다.”
당신 책에서 여성의 역할은 미미하다.
“내 작품 대부분은 ‘남자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남자들이 활약했던 시대가 무대다. 여성이 활약할 기회가 적은 시대라 영향력도 작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대의 여성을 부각시킨다면 결국 ‘여성 입장에서 바라본 남자들’에 대해 쓸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가벼운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다.”
‘역사의 신’이 있다면, 그는 무엇을 원할까.
“역사는 인간이 만들었기에 인간에게 이렇게 저렇게 명령하는 신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있다면 ‘꼼꼼하게 비판하며 역사를 읽기보다는, 인간이 살았던 증거를 집적한 역사 속에 깊이 빠져들어 가라’고 말하지 않을까.”
역사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히스토리’를 읽어야 할 것이다. 영화나 TV, 만화에는 역사가 간략하게 정리돼 있다. 읽는 행위에 비하면 보는 행위는 수용 가능한 정보량이 적다. ‘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이야기를 간략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알고 간략하게 만드는 것과 모르고 간략하게 만드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 두께와 깊이가 없는 작품은 일시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스테디셀러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역사적 영웅들에게는 어떤 덕목이 있었나.
“‘최대의 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라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마음가짐이지만, 이런 마음가짐이 승자· 패자를 가르는 잣대가 되는 것 같다.”
작품으로 인해 오해받은 적이 있나.
“나는 늘 생각을 정직하게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것이 무엇이든, 한국인 편에 서서 말을 하는 것보다 경우에 따라 한국인이 화를 내더라도 정직하게 말하는 편이 한국인의 지성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현대 독자를 위해 과거 서구 사람들의 이야기를 50년 동안 썼다. 한국 독자가 굳이 내가 일본인이라는 점을 의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별히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다. 『그리스인 이야기』 마지막에 쓴 말을 여기서 다시 하고 싶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있어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한국 독자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 답변을 덧붙였다.

“가슴 속에 원한을 계속 쌓아두면, 그 원한을 어떻게 털어낼지를 생각하며 일생을 보내는데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반대로 그런 것을 잊고, 과거의 가해자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그들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과거에만 눈을 돌리고 일생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가해자 일본에 분노하려면, 또 사이좋게 지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인듯 에너지의 원천은 역사읽기가 아닐까.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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