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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특사에 비건, 美 의도는 "북미협상 장기화 각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비핵화 최대 고비될 폼페이오 4차 방북 관전 포인트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다음주 초 북한 비핵화 협상의 최대 고비가 될 네번째 방북에 나선다.

종전선언-핵리스트 교환, 절충안 마련될 수 있을지 관건 #대북특별대표 스티븐 비건 동행, 북미협상 장기화 포석도 #"김정은 면담예정 없다"…2차 북미정상회담 정지작업 할듯 #"문 대통령, 남북개선-북핵해결 따로 진전 못한다고 했었다" #미,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방침엔 과거 발언 거론하며 견제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조선중앙통신]

폼페이오 장관은 2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향후 북한 문제를 담당할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에 스티븐 비건 포드 부회장(55)을 지명했다. 비건은 이번 폼페이오 4차 방북에 동행한다. 조셉 윤 전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2월 은퇴한 뒤 성 김 주 필리핀 미 대사가 대행하던 북한과의 협상 역할을 비건이 맡게 된 셈이다. 미 정부로선 드디어 확실한 조직과 체제를 갖춰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나설 준비가 된 셈이다.

23일(현지시간) 스티븐 비건 포드 부회장(왼쪽)을 대북특사에 임명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스티븐 비건 포드 부회장(왼쪽)을 대북특사에 임명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비교적 이른 시점(relatively soon)에 (북한으로) 떠날 것"이라며 다음주 초 방북을 밝히면서 "북한에 가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면담할 계획이 없으며(no plans for a meeting) 만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3차 방북 당시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불발되면서 '빈 손 방문'이란 비난이 있었던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워싱턴 외교가에선 "즉 김 위원장과의 면담 일정이 없음을 미리 알린 것 자체가 4차 방북 시 김 위원장 면담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은 9월말까지 이어질 일련의 '한반도 빅 이벤트'의 출발점이다. 바꿔 말하면 한반도 정세의 향배를 가를 중대 분수령이자 시금석이다.

이번 결과에 따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이 예상되는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70주년 행사, 9월 중순 예정의 남북정상회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폼페이오의 방북을 통해 교착 상태에 빠졌던 북미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될 경우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청사진이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
폼페이오의 이번 평양 담판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과,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 핵 시설 리스트 신고가 바터(교환)될 수 있을 것인가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악수하는 모습.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악수하는 모습.

그동안 북한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인 종전선언과 '불가역적'인 핵 시설 리스트 제출은 똑같은 비중으로 다룰 수 없다는 입장을 관철해 왔다. 반면 미국은 핵시설 리스트를 초기에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칫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종전선언을 하는 건 안 된다는 주장을 펴 왔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이 서로의 명분을 챙기면서 타협할 절충안이 마련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다만 폼페이오와 비건 대표 모두 이날 회견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라는 점을 재차 강조함으로써 섣불리 물러설 뜻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또 하나 주목되는 건 이번 방북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모색될 것이냐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어차피 비핵화 관련 굵직한 결정은 두 정상이 할 수 밖에 없고, 또 두 정상 모두 자신들의 몫으로 남기려 할 것"이라며 "따라서 이번 폼페이오 4차 방북의 성패 여부는 2차 북미정상회담의 정지작업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내주 방북을 앞두고 대북 특사에 임명된 스티브 비건 포드 부회장. [EPA=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내주 방북을 앞두고 대북 특사에 임명된 스티브 비건 포드 부회장. [EPA=연합뉴스]

실제 이번 방북에 앞서 대북특별대표로 비건을 지명, 동행시키는 건 사실상 "북미협상의 장기화를 각오한다"는 미 정부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향후 중요 고비마다 폼페이오가 북한을 찾을 순 있겠지만 시리아·러시아·중국 문제 등 방대한 업무를 총괄하는 폼페이오가 이번 4차 방북을 통해 "앞으로 미북 협상 전담은 비건 대표에 맡긴다"는 추인을 북한 측에 전달하는 의미도 있다.

비건은 미 하원과 상원의 외교위원회에서 경력을 쌓은 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1기 행정부(2001~2005년)에서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콘돌리자 라이스 NSC 보좌관을 지근 거리에서 도왔다. 지난 3월 허버트 맥매스터 NSC 보좌관이 물러날 때 후임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당시 라이스 전 보좌관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비건을 강하게 추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건은 미시간 대학에서 정치학과 러시아어를 공부했으며 3대째 포드 직원이다.

이날 폼페이오 장관은 회견에서 비건을 소개하면서 "그는 거친 협상 환경(tough negotiating settings)에도 폭넓은 경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며 향후 북미협상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걸 내비치기도 했다. 다만 비건은 외교 문제를 두루 다뤄왔지만 북한 쪽에는 별 경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

한편 미 정부는 이날도 한국의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방침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나워트 대변인은 공동연락사무소가 북한 비핵화에 부정적 영향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 "그리 오래되지 않는 기간 전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 핵 프로그램 해결과 따로 분리해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과 스탠스를 밝힌 바 있다. 우리는 일본·한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일본을 언급한 이유는 일본 또한 그곳의 긴밀한 동맹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북한 지원이 대북제재를 위반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 모든 걸 검토해 볼 것(We would take a look at all of that)"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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