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가 영접, 마윈이 동행 … 93세 마하티르 마음 돌린 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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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커창 총리와 합동 기자회견 도중 입술을 만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커창 총리와 합동 기자회견 도중 입술을 만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이 93세의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를 극진하게 모시고 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승리해 15년 만에 재집권한 마하티르 총리는 17~21일(4박5일) 중국을 방문 중이다.

시진핑 등 권력 1~3위 극진한 대접 #일대일로에 부정적이던 마하티르 #“일대일로 지지 … 중국 지원 기대”

마하티르 총리는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및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잇따라 회담하고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접견했다. 중국 권력 서열 1~3위가 하루 동안 외국 요인과의 만남에 차례로 나서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중국의 예우는 공항 영접에서부터 각별했다. 18일 베이징에 도착한 마하티르 총리 영접을 위해 밤늦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 겸 외교부장이 공항에 나갔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 방중 때처럼 중국은 차관 내지 차관보급이 외국 정상을 맞는 게 일반적이다.

마하티르 모시기에는 중국 민간 기업도 동원됐다. 첫 도착지인 항저우(杭州)에서는 마윈(馬雲) 알리바바 그룹 회장이 동행하며 전자결제와 스마트 물류 등 알리바바의 최첨단 기술을 직접 시연했다. 19일 베이징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400여 명의 기업가들이 모여 마하티르 총리를 환영하는 ‘기업가클럽 포럼’을 열었다. 마윈 회장은 이날도 마하티르 총리를 수행하듯 모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이 마하티르에게 정성을 쏟는 이유는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기사가 설명해준다. 인민일보는 20일자 해외판 1면에 게재한 논평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중국과 말레이시아 협력의 중요한 플랫폼”이라며 “마하티르 총리는 이전 정권에서 추진했던 대형 프로젝트와 관련해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이번 방중은 이런 의문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일대일로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해 오던 사업들을 중단시키며 제동을 건 마하티르의 마음을 되돌리겠다는 의미다.

마하티르는 취임 직후 전임 총리 나집 라작 전 총리를 부패 혐의로 기소하며 ‘적폐청산’에 나섰다. 그는 친중(親中)정책을 펼친 나집이 합의한 688㎞의 동해안철도(ECRC) 공사를 중단시켰다. 140억 달러(약 16조원)를 들여 말레이시아 서해안과 동해안을 잇는 이 철도는 중국에 전략적 가치가 크다. 중동으로부터 수입하는 에너지 자원의 80% 이상이 통과하는 믈라카 해협이 봉쇄되는 유사시에도 수송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하티르는 경제적 필요성과 중국과의 계약조건 등 사업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뿐만 아니라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던 두 개의 파이프라인 건설 등 모두 230억 달러 규모의 사업을 전격 중단시켰다.

시진핑. [연합뉴스]

시진핑. [연합뉴스]

그는 지난 13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ECRC와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고 타당성도 없다고 본다”며 “가능하다면 우리는 이 계획을 중단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방중 직전까지 협상력을 높여 유리한 고지에 서려는 의도가 93세 베테랑 정치인의 발언에 묻어났다.

시 주석은 20일 회담에서 “말레이시아는 해상 실크로드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라며 “양국은 일대일로를 주축으로 새로운 협력을 추진하자”고 말했다. 마하티르 총리가 주창해 온  ‘아시아적 가치관’을 치켜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하티르 총리는 “일대일로 구상을 지지하고 참여하기를 바라며 중국 기업의 투자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선 빠졌지만 그는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중국이 공감해 주고 재정문제 해결을 지원해 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마하티르 총리가 ECRC 공사비 융자 조건 등의 재협상과 중국의 재정 지원 등 최대한의 실리를 얻어내고 자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철도·파이프라인 건설 재개 문제를 논의했을 것임을 뒷받침하는 발언이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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