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당 1억' 미친 집값…홍콩 맥도날드에는 '맥난민'이 산다

중앙일보

입력

혹시 '맥도날드 할머니'를 기억하세요?

전기세 아끼려 패스트푸드 매장서 숙식 #집값 안정화 위한 특단의 조치 필요해

트렌치코트 차림에 영자신문을 들고 몇년째 서울 맥도날드 매장에서 밤을 보내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분 말입니다. 어르신은 경제적 사정 때문에 24시간 운영되는 패스트푸드 매장을 전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홍콩에서는 집도 있고 직장도 있는 이들이 밤마다 맥도날드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맥난민(McRefugee)' 또는 '맥슬리퍼(McSleeper)'라고 부릅니다.

햄버거 세트를 시킨 채 잠을 청하는 홍콩의 한 시민 [출처 BBC]

햄버거 세트를 시킨 채 잠을 청하는 홍콩의 한 시민 [출처 BBC]

지난 6월 국제청년회의소(JCI)는 홍콩에서 24시간 영업 중인 맥도날드 매장을 찾아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최소 3개월간 매장에서 밤마다 잠을 자는 사람들의 수를 조사한 거죠. 그 결과 110개 매장 가운데 84곳에서 334명의 맥난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013년 조사(57명) 때에 비해 6배가 늘어난 겁니다.

19~79세인 맥난민 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조사에서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 중 절반 이상(57%)은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고 있었고, 3분의 2 이상(71%)은 월세든 자가든 자기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직자나 노숙자일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특히 취안완(荃湾)구 매장에서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취안완은 집값이 급등한 것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지난 2017년 9월에는 23평 아파트의 분양가가 20억8000만원, 평당(3.3㎡)당 가격으로는 900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밤마다 맥도날드 매장에서 잠을 청하는 이른바 '맥난민'들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밤마다 맥도날드 매장에서 잠을 청하는 이른바 '맥난민'들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이들이 밤마다 맥도날드로 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조사를 진행한 제니퍼 헝 JCI 중국지부 의장은 홍콩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꼽습니다.

홍콩의 집값은 상상 이상으로 비쌉니다. 평(3.3㎡)당 1억 원을 넘나드는 비싼 가격이라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홍콩 주민들은 임차료가 저렴한 공공 임대주택으로 몰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홍콩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자 수는 27만 명에 달하지만 입주하기까지 평균 대기기간은 5년 1개월에 이릅니다.

홍콩의 좁은 아파트 내부 [출처 SoCO]

홍콩의 좁은 아파트 내부 [출처 SoCO]

투콰완(土瓜灣)의 한 아파트에 세들어 사는 한 여성은 "방에는 창문이 전혀 없는 데다, 주인은 에어컨 요금으로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요구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실제 부과되는 전력요금의 16배를 내야 한다는 겁니다. 습하고 더운 여름날, 에어컨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없었던 그는 시원하고 안전한 맥도날드로 발걸음을 옮기게 됐습니다.

사실 주거문제는 홍콩의 오랜 약점으로 꼽혀왔습니다. 집을 둘러싼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홍콩 정부는 지난 6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빈집세(空置稅) 도입 계획을 밝힌 상태입니다.

빈집세는 주택 개발업자가 분양한 아파트가 1년 이상 팔리지 않고 빈집으로 남아있으면, 여기에 임대료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부과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시가 20억 원 아파트의 연간 임대료가 시가의 2%인 4000만 원이라면, 빈집세는 연 임대료의 두 배인 8000만 원이 됩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신축 아파트의 일부를 매물로 쌓아두고 집값이 더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행태를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을 도입한 겁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이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닌 상황이라 시민들의 기대감은 크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살아도 사는게 아니다'

문득 이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내 한 몸 편하게 뉘일 수 있는 편안하고 안락한 집. 그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받지 못한 이들이 오늘도 홍콩의 맥도날드로 향합니다.

차이나랩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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