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선물' 담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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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아제르바이잔 도착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10일 오후 아제르바이잔 알리예프 국제공항에 도착해 라시자데 아제르바이잔 총리(왼쪽)의 영접을 받고 있다. 바쿠=안성식 기자

6월로 잡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행 보따리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재방북을 차분히 봐달라고 강조했지만 9일 노무현 대통령의 몽골 발언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는 형국이다.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언급은 정상회담이 무르익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 노 대통령 승부수 띄우나=노 대통령의 언급은 북한에 대한 양보와 지원이란 카드를 한꺼번에 꺼내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대해 "실제로 (북한으로서는) 불안할 수 있는 여러 사정이 있다"고 말하는 등 입장 선회 조짐이 드러난다. 북한은 지난달 말 평양 장관급회담 때 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에 '방어적 훈련'이란 점 등을 설명했고 북측은 요구사항을 공동보도문에 담으려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불과 보름 만에 노 대통령이 북측 주장에 대해 일부 이해를 표명하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 때문에 한.미 군사훈련뿐 아니라 국가보안법 폐지, 방북시 참관지 제한 철폐 등 북한의 요구 사항에 대해 전향적 검토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성공적으로 치름으로써 2차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 제2 베를린 선언될까=북한에 제도적.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언급도 파장이 클 수 있다.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에 북한이 전향적 의사를 표명하면 '과감한 대북지원'을 하겠다는 정부 구상의 틀이 헝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언급을 꼼꼼히 따져보면 북한의 체제 불안과 대남 불신 해소에 물질적 지원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노 대통령의 언급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DJ의 베를린 선언을 연상시킨다는 시각도 있다. 그해 3월 김 전 대통령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민간 경협을 정부 차원으로 확대해 도로.항만 등 대북 SOC 제공을 언급했고 다음달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대북 중대 제안(200만㎾ 대북송전 구상) 외의 또 다른 형태의 대규모 지원을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 실무 접촉 비공개 논란=김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16일 열리는 금강산 실무접촉은 비공개로 이뤄진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이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등 장관급 접촉임에도 남북 당국이 비공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DJ 방북에 쏠린 국민적 관심을 감안할 때 투명한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00년 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에서 열린 차관급 실무접촉 때 정부는 비공개 회의로 '비밀거래' 의혹에 시달렸고, 불법 대북송금 사실이 드러나 정상회담의 의미가 훼손되기도 했다.

◆ 진화 나선 이종석 장관=이 장관은 10일 노 대통령 발언과 관련, 브리핑을 자청해 "있는 그대로 문맥대로 이해해 달라"고 진화에 나섰다. 다음은 발언 요지.

"대통령 말씀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공동번영을 위해 틀을 좀 크게 보고 적극적으로 상황을 변화시켜 나가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참여정부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을 추진해 왔고 남북한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이 이뤄졌고 일정 부분 진전이 있었으나 현재 6자회담은 지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구상 차원에서 호혜적 남북 경협을 보다 더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든다. 대통령 말씀은 현재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필요한 진전을 이뤄내기 위해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이해한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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