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로 물만 봐도 시름 사라져"… 가뭄에 4대강 끌어다 쓰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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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낮 12시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 언덕 위에서 도수로를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쏴~~’ 하는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하천으로 쏟아졌다. 이곳에서 27.5㎞가량 떨어진 금강 공주보 하류에서 끌어온 물이다. 이 물은 차동천을 따라 내려간 뒤 신양천과 합쳐져 예당저수지까지 8~9㎞를 흘러갔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서 마을 주민들이 도수로를 통해 끌어온 물을 지켜보고 있다. 이 물은 하천을 따라 예당저수지까지 흘러간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서 마을 주민들이 도수로를 통해 끌어온 물을 지켜보고 있다. 이 물은 하천을 따라 예당저수지까지 흘러간다. 프리랜서 김성태

폭이 좁은 차동천에서는 유속이 빨랐지만 넓고 수심이 깊은 신양천에서는 유속이 급속하게 느려졌다. 도수로를 통해 하루 최대 12만9000t의 물을 끌어올 수 있지만 중간중간 논밭에 물을 공급하느라 예당저수지 도착하는 데는 하루가 넘게 걸린다고 한다.

지난 9일 금강~예당저수지 27.5㎞구간 도수로 가동 #하루 12만9000t씩 끌어와 바닥 드러난 저수지 채워 #백제보 지역 주민들 "금강물 부족해진다" 대책 요구

오후 2시 예산군 대흥면 예당저수지 입구인 무한천. 동산교에서 바라본 무한천 상류 쪽은 바닥이 드러나 있다. 지난달 초만 해도 물이 가득 찼던 하천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여파가 고스란히 하류인 예당저수지까지 미쳤다.

예당저수지 초입인 상중리와 교촌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낚시 좌대 절반가량은 육지로 변한 누런 바닥에 올라와 있고 낚시객을 실어나르던 보트도 마른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뭄으로 수심이 낮아지자 이곳을 찾는 낚시객도 자취를 감췄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 차동천에서 도수로를 통해 끌어온 금강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물은 하천을 따라 예당저수지까지 흘러간다. 신진호 기자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 차동천에서 도수로를 통해 끌어온 금강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물은 하천을 따라 예당저수지까지 흘러간다. 신진호 기자

예당저수지가 있는 예산군 대흥면 지역에는 지난달 2일 38.9㎜의 비가 내린 뒤 40여 일이 넘도록 비가 내리지 않았다. 저수율도 76.2%를 기점으로 계속 내려가 10일 오후 3시에는 29.7%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65.7% 평년 56.4%와 비교해서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20일까지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이 고갈될 상황에 놓인다.

가뭄으로 예당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자 충남도와 예산군이 정부에 금강~예당저수지 도수로 가동을 요청했다. 한국농어촌공사와 금강홍수통제소 등은 협의를 거쳐 지난 9일 오후 6시부터 도수로 가동에 들어갔다. 4대강 보에 담은 금강물 끌어다 농업용수로 쓴 건 처음이다.

예당저수지는 농업용수 등을 공급하는 저수지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예산군 대흥·응봉·신양·광시 등 4개 면(面)에 걸쳐 있으며, 면적(10.88㎢)은 서울 여의도의 3.7배에 달한다.

황선봉 예산군수는 이날 도수로 개통 현장을 둘러보며 “벼 수확기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큰 피해가 우려된다”며 “도수로 가동으로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고 반겼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 신양천에서 도수로를 통해 끌어온 금강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물은 하천을 따라 예당저수지까지 흘러간다. 신진호 기자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 신양천에서 도수로를 통해 끌어온 금강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물은 하천을 따라 예당저수지까지 흘러간다. 신진호 기자

신양면 대덕1리 신원철 이장은 “도수로를 통해 내려가는 물만 봐도 큰 시름을 덜었다”며 “다만 상류 지역인 차동리와 대덕리 등의 주민들도 금강 물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보를 설치해달라”고 말했다.

1022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금강~예당저수지 도수로는 2016년 4월 착공해 지난 2월 완공했다. 극심한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2015년 말 충남도가 정부에 공사를 요청했다. 당시 정부는 사태가 시급하다고 판단,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했다.

도수로는 공주보 하류 2.3㎞ 지점인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에서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를 연결한다. 도수로 중간에 가압장 3곳과 양수장 1곳이 설치됐다. 차령산맥을 넘기 어려워 727m의 터널도 뚫었다. 도수로 가동으로 공주시 476㏊, 예산군 494㏊의 농경지가 혜택을 입게 됐다.

극심한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난 충남 예산군 대흥면 예당저수지. 정부는 예당저수지 저수율이 30% 아래로 내려가자 금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도수로 가동에 들어갔다. 신진호 기자

극심한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난 충남 예산군 대흥면 예당저수지. 정부는 예당저수지 저수율이 30% 아래로 내려가자 금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도수로 가동에 들어갔다. 신진호 기자

반면 금강 물을 예당저수지로 보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충남 부여지역 주민들이 가뭄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예당저수지로 물을 보내면 금강의 수량이 부족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 김모씨는 “금강 물을 예당저수지로 보내는 데다 앞으로 백제보까지 열게 되면 금강 하류 지역 농경지는 가뭄에 시달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강 수위가 낮아지면 마을 지하수가 고갈된다는 이유도 들었다.

그러자 농어촌공사와 수자원공사 공주홍수통제소는 부랴부랴 이날 오전 11시 백제보 홍보관에서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농어촌공사 측은 “예당저수지로 물을 보내도 금강 수원이 부족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서 마을 주민들이 도수로를 통해 끌어온 물을 지켜보고 있다. 이 물은 하천을 따라 예당저수지까지 흘러간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서 마을 주민들이 도수로를 통해 끌어온 물을 지켜보고 있다. 이 물은 하천을 따라 예당저수지까지 흘러간다. 프리랜서 김성태

금강홍수통제소는 주민들에게 금강 물을 예당저수지로 보내도록 허가하면서 ‘8월 31일까지 총 300만t’으로 공급량을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허가조건도 하류 지역 농민의 민원이 발생하면 즉시 공급을 중단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백제보의 수위는 지난해 6월 정부의 4대강 보 개방 조치로 최고 관리수위 4.2m에서 2.5m까지 떨어졌다가 주변 농민들의 반발로 다시 4.0m로 올린 상태다.

충남도 물관리정책과 이용현 팀장은 “예당저수지로 물을 보내는 동안 금강 하굿둑에 담아놓은 물을 적게 사용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부여·예산=김방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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