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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전 회담」성패가 해결의 열쇠|「전씨 문제」처리 카운트다운 돌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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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겁고 불안스런 기류가 정국 밑바닥을 흐르기 시작하고 있다.
5공 비리 해결의 핵심인 전두환 전 대통령 문제의 처리가 긴박한 정치과제로 떠오르고 있으나 어떤 방식의 해결방안도 정국의 안정을 보증하기 어렵도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씨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난관은 노태우 대통령 귀국 후 노-전 회담의 조속한 성사와 양자간의 합의가 가능할 것이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부재중 윤길중 민정당 대표위원이 연희동을 방문하고 이어 양측간의 막후교섭이 활발해지면서 양측간의 견해차는 심각하게 드러났다.
청와대·민정당 측은 ▲전씨의 사과·해명 ▲재산 1백억원 헌납 ▲낙향을 요구하고 그것이 이뤄지면 대통령의 정치적 사면조치를 보장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씨 측은 ▲사과하고 ▲부정한 재산이 있는지 조사할 수는 있지만 ▲미리부터 헌납할 액수를 정해봤자 국민이 납득할 리도 없고 낙향할 수도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연희동 측은 정치자금 면에서는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 노 대통령 측이 먼저 전씨 문제에 대한 확실한 「보장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씨 측은 만약 노 대통령이 과거 9개월 동안 해왔던 것처럼 책임을 회피할 경우에는 정치자금의 내막을 샅샅이 공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며 이 경우 「법정에서는」것까지도 각오하고 있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한다. 이것이 전씨 측의 이른바 「독자해명」방안이다. 이것은 노-전 회담을 촉구하는 「공갈용」이기도 하지만 전씨 측의 최후의 카드이기도 하다.
민정당 등 여권일각에서는 더 이상의 사태악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노-전회동의 불가피함을 강조하고 있으나 청와대 등 노 대통령 측근 일각에서는 여전히 노 대통령의 직접개입 없는 사태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눈치다. 전씨는 「미련」을 버려야하며 이들은 노 대통령이 5공 비리의 흙탕물에 개입 않고 「순결」하게 살아남아야 통치권을 유지할 수 있으며 민정당의 정치적 회복과 전씨의 복권 같은 것도 해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민정당 일각에서는 이를 위해서는 「국민감정을 진정시킬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까지 보는 측도 있다.
이것은 전씨에 대한 수사도 포함한다는 뜻이다.
연희동 측은 그들이 처한 막다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여당과 야당지도자 모두의 정치자금 흑막공개라는 최후 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경우 정치권전체의 불신과 붕괴현상이 뒤따를 것은 명약관화하다.
설사 노-전 회동이 이뤄지고 사태수습에 관한 그들간의 담판이 이뤄진다고 해서 그것으로 과연 국면전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인 가에는 여전히 의문이 따른다.
왜냐하면 전씨의 사과-재산헌납-낙향이란 방안이 이미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방안이 되기에는 때늦은 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5공 비리에 대한 조사가 현 단계로서는 수습될 수 없다는 점이다. 야당 측이 이미 전씨의 직접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것은 야당은 일해 청문회 이후 국민사이에 팽배해진 5공 비리에 대한 분노를 외면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해와 관련해 전씨를 수사하는 것은 물론 골프장 내인가, 제2 민항, 을지로재개발 등 전씨가 관련된 「5공 의혹」을 모두 수사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씨 친·인척에 대해 이뤄지고 있는 검찰수사 자체를 사태의 정치적 수습을 위한 방편으로 간주하고있다.
둘째 앞으로 잇달아 열릴 광주청문회·언론통폐합 청문회 그리고 부실기업에 대한 예정된 국정조사는 다시 또 다른 전씨의 책임문제를 제기하게될 것이다. 따라서 5공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수습방안은 일시적인 해결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째 전씨 문제처리로 인해 노-전간의 알력이 계속되면서 「수 천억 원에 달하는 정치자금」이 실체로 등장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이라는 과제가 새로이 떠오르게 된다는 점이다. 이제 노-전이 책임을 「공유」해야만 하는 비밀스런 사정, 야당조차도 그 흑막에 개재돼 있다는 정치자금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가 보내지고 있으며 음성화된 그 내막의 공개요구도 점차 끓어오르게 될 것이다. 그 경우 전씨는 또다시 새로운 조사의 요구에 직면한다고 예상할 수 있다.
이에 전씨 문제의 「정치적 해결」은 특별한 극적인 조치가 아니고서는 국민의 감정적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어렵게 됐으며 앞으로의 정치상황이 예측하기 어려운 우여곡절을 거듭할 것으로 본다면 한때의 미봉책으로 그칠 가능성이 많다.
이미 전씨 문제를 넘어서서 노 정권을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는 학생 운동권 등 급진세력들은 전씨 문제의 처리방식을 꼬투리로 전면공세를 취할 것으로 보이며 이런 비판이 앞으로 광주사태·언론 통폐합·부실기업조사 등을 통해 상당한 폭의 공감을 얻어갈 가능성마저 엿보이고 있다.
때문에 야당 측은 이런 동향을 주시하면서 지금까지 노 정권의 안정적 유지에 협력적이었던 자세에서 움츠러들고 있다.
노 정권이 지금까지 청와대 회담 등을 통해 겨우 구축해가던 정치적 안정의 틀이 위협을 받고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씨 문제를 노-전 두 파간의 세력다툼이란 폭 좁은 시각에서 다뤄온 현 집권세력의 잘못된 상황판단과 대체능력의 부족, 그리고 지도력 부재 때문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미 노 정부와 민정당은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이 붕괴된 공백을 민주적으로 메워 가는 역할을 수행하는데서 능력부족을 의심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몇 차례 인사정책에서 중대한 실책을 범했으며 사회의 갈등·분규에 대한 통제력을 크게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급진좌경이론의 급속한 확산, 노조 등 새로운 계층의 급격한 대두, 기존가치의 혼란 등 사회가 가위 「혁명적」변모를 겪고 있는 과정에서 집권층이 뿌리를 못 내리고 표류하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전씨 문제의 처리방안이 매듭지어지는 방향에 따라 잠복돼 있는 이 위기가 표면으로 분출할는지도 모르며 집권세력이 통제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와 같은 위기는 자못 심각한 사태로까지 번져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금후의 조처가 주목된다. <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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