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의 손가락이 형성되는 '세포자멸의 속도', '시속 2mm'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붉은색 죽음'이 원형의 세포를 순식간에 잠식한다. 개구리의 알에서 추출한 세포에는 형광색의 세포질이 가득 차 있었으나, 생화학적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죽음이 순식간에 세포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속도는 분당 30μm(마이크로미터), 시속 2㎜로 측정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제임스 퍼렐 교수 연구팀에 의해 ‘죽음의 속도’가 처음으로 규명되는 순간이었다.

17주 태아의 손. 아폽토시스는 인체의 형태를 만드는 데 관여한다. 태아의 손가락 사이에 있던 세포들이 PCD를 거치며 없어지고 마침내 손가락이 형태를 갖추게 된다. [중앙포토]

17주 태아의 손. 아폽토시스는 인체의 형태를 만드는 데 관여한다. 태아의 손가락 사이에 있던 세포들이 PCD를 거치며 없어지고 마침내 손가락이 형태를 갖추게 된다. [중앙포토]

죽어서 개체 살리는 세포자멸 ‘아폽토시스’ 

9일 국제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와 ‘뉴사이언티스트’ 등 외신은 세포의 죽음에 대한 속도를 규명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이 말하는 죽음은 세포의 자멸, 즉 ‘아폽토시스’(Apoptosis)다.

아폽토시스는 외부의 충격이 아닌, 세포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정 기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세포는 스스로 생명을 다하게 되는데 우리 몸 속에 있는 생체 프로그램은 이런 노화 세포와, 암과 같은 비정상 세포가 스스로 사멸하게 함으로써 신체 건강을 유지하게 돕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폽토시스를 세포의 ‘예정된 죽음(PCD)’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포는 일정기간 역할을 수행하다가 줄기세포에 의해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같은 기능의 세포가 생성되면 죽어가게 되는 아폽토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아폽토시스는 개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세포의 예정된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PCD, 즉 프로그램화 된 세포의 죽음이라고도 불린다. [로이터]

세포는 일정기간 역할을 수행하다가 줄기세포에 의해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같은 기능의 세포가 생성되면 죽어가게 되는 아폽토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아폽토시스는 개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세포의 예정된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PCD, 즉 프로그램화 된 세포의 죽음이라고도 불린다. [로이터]

아폽토시스는 인체의 형태를 만드는 데도 관여한다. 예를 들어 태아의 손가락은 주걱 모양의 초기 형태에서 손가락 사이의 세포가 예정된 죽음에 빠지면서 생겨나게 된다.

PCD 겪은 세포 주입하자 '방아쇠 효과' 시작 

아폽토시스의 속도를 관찰하기 위해 연구팀은 먼저 개구리 알에서 세포질을 추출해 얇은 튜브에 넣었다. 그리고 이미 PCD를 겪은 세포를 튜브의 한쪽 끝에 주입하고 이동 속도를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관찰이 쉽게 개구리 알에는 녹색, PCD 세포에는 붉은색의 시료를 첨가했다. 붉은색 신호탄이 떨어지자 사형집행 단백질로 알려진 '카스파제'가 활동을 시작했고 세포는 연속적으로 자멸 과정에 돌입했다. 연구팀은 이를 ‘방아쇠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세포자멸인 아폽토시스의 속도가 규명됐다. 분당 30마이크로미터, 시속 2mm의 속도다. [스탠퍼드대학교]

세포자멸인 아폽토시스의 속도가 규명됐다. 분당 30마이크로미터, 시속 2mm의 속도다. [스탠퍼드대학교]

송재환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는 “DNA 등의 돌연변이 혹은 영양ㆍ산소결핍 등을 야기시키는 스트레스가 오는 경우, 세포는 사멸이나 노화 작용을 작동시켜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는 아폽토시스에 들어간다”며 특히 “비정상적 세포의 출연을 막기 위해 세포들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이용해 방어작용을 작동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