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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수정의 직격 인터뷰

마린온은 수리온 모델에서 파생된 다른 헬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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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국산 헬기 수리온 개발한 황정선 박사

한국형 중형 헬리콥터 ‘수리온’을 배경으로 선 황정선 박사. ’수리온에 대해 옹호하는 사람을 ‘진영’을 거론하면서 까지 비난하고, 방산 종사자들을 폄하하는 극단적 여론은 지양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최정동 기자]

한국형 중형 헬리콥터 ‘수리온’을 배경으로 선 황정선 박사. ’수리온에 대해 옹호하는 사람을 ‘진영’을 거론하면서 까지 비난하고, 방산 종사자들을 폄하하는 극단적 여론은 지양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최정동 기자]

대한민국을 세계 11번째 헬리콥터 개발국 위치에 올려준 헬기 ‘수리온’이 조명받는 두 사건이 최근 있었다. 먼저 지난 6월 5일, 국방부 연병장 잔디밭에 수리온이 착륙한 일이다. 수리온 수입에 관심을 보여 온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선보이기 위해 정부가 준비한 이벤트였다. 한 달 뒤인 지난달 17일엔 비극이 발생했다. 수리온을 기본 모델로 개발한 해병대 상륙 기동헬기 ‘마린온’이 추락하면서 조종사 등 5명이 순직했다. 세상은 수리온을 다시 끄집어냈다. ‘명품’ ‘깡통’ ‘방산 비리의 정수’ 등의 말들이 오갔다. 수리온 개발 착수 6개월 뒤인 2007년 1월부터 2012년 6월 개발 완료 때까지 참여한 황정선(62) 전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기계공학 박사)을 8일 만났다.

100% 완벽한 무기체계는 없다 #90·95점 얘기 않고 ‘나쁜 헬기’ #헬기 독자 개발했어도 남는 건 채찍 #UH-60블랙호크도 계속 개선 중 #우리와 달리 미군, 사고 일일이 공개 #사고 조사·연구할 독립적 조직 필요

마린온 추락사고 조사위원회가 오늘 공식 출범했다. 사고 원인을 뭐라고 보시나.
“먼저 사고로 희생된 분들께 애도를 표하고, 유가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저 역시 공군 출신으로 동기생이 임무 비행 중 순직한 것을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그 슬픔의 무게를 느낀다. 유럽에서 일어난 ‘슈퍼 푸마’ 헬기 추락 사고와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다른 경우로 보인다. 마린온의 블레이드(날개)는 대략 분당 270바퀴, 초당 4.5바퀴 돈다. 블레이드 전체가 떨어져 나가기 전 하나가 먼저 떨어져 나간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되면 정상 작동 때 상상도 못할 하중이 한쪽으로 쏠린다. 조사를 앞둔 상황에서 어떤 예단도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마린온 사고를 계기로 기본 모델인 수리온의 품질 얘기를 많이 한다.
“수리온과 마린온은 다른 헬기란 걸 말하고 싶다. 마린온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상세히 말할 수 없지만, 마린온은 해병대 작전환경을 감안해 기체 부식방지 처리, 함상용 접기식 블레이드, 항속거리를 늘리기 위한 보조연료탱크 추가, TACAN (Tactical Air Navigation) 추가 등 수리온 기준으로 여러 부분이 변경됐다. 기본 모델이 개발되면 이를 기본으로 다양한 파생형 모델이 개발된다. 모델별 요구도에 따라 상당한 부분이 개조 또는 개량되기 때문에 각각의 모델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본 모델과 직접 비교는 어렵다.”

공사 교수를 거쳐 2007년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로 옮긴 황 박사는 국과연 한국형헬기사업단( KHP) 기술관리단의 연구원으로 기체 구조와 관련한 정하중 및 동하중(Static and Dynamic Load), 내추락성(Crashworthiness) 분야를 담당했다. 그는 “역사상 우리 손으로 처음 만든 수리온 헬기 개발사업에 참여한 것은 영광”이라고 말했다.

수리온은 한국 정부가 ‘해외협력사의 지원으로 73개월 내 우리 손으로 헬기를 만든다’는 목표로 프랑스 에어버스 헬리콥터(AH·유로콥터)사의  AS 532 쿠가(Cougar)헬기를 기본 모델로 해서 개발됐다. 개발 착수 4년 만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고, 2018년 8월 현재 90여대가 배치됐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몇 년 전 동절기 헬기 방풍창(Windshield) 결빙 등 문제가 많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방풍창의 얼음 제거 성능은 원래 개발 때부터 충족했다. 지난 겨울 수개월에 걸쳐서 미국 미시간 주에서 수행된 2차 체계결빙시험을 통해 미흡사항을 보완했고, 현재는 감항당국의 감항(인증) 영향성 검토를 마치고 개선된 형상에 대한 설계변경을 승인받는 과정에 있다. 조종석 유리 위에 헬기가 전선에 걸렸을 때 끊고 가는 절단기가 있다. 여기에 결빙이 돼 얼음이 깨지면서 엔진흡입구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선 절단기에 열선을 넣었다. 세계적인 유례를 찾기 어렵다.”
헬기와 같은 종합시스템은 해외에서도 개발 초기에 사고가 이렇게 발생하나.
“우리가 헬기를 논할 때 먼저 떠올리는 모델이 육군이 다수 보유하고 있는 미 시코르스키의 UH- 60 블랙호크다. 1970년 초반, 미 육군의 다목적기동헬기(UTTAS) 기종 선정에 나선 UH- 60 시제기인 YUH- 60A 헬기가 운용시험 중 무장병력 탑승 상태에서 산악에 추락했다. 경미한 부상자가 발생했고, 심하게 손상된 로터 블레이드(날개)를 사고 현장에서 교체해 기지로 귀환했다. 이 사고가 UH- 60 선정에 크게 기여했다.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로, 비행기의 생존성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수리온의 생존성은 어떤가.
“내추락성이란 용어가 있다.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추락상황에서 생존성을 보장하는 수준을 말한다. 다양한 추락조건에서 조종사를 포함한 탑승자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설계개념이다. 상식적으로 그 수준이 높을수록 생존성이 높아진다. 수리온은 참조 모델인 AS 532 쿠가에 비해 높은 수준의 내추락성을 갖도록 설계됐다. UH- 60 블랙호크와 유사한 수준이다.”

황 박사는 우리 군의 사고 기록 문화를 지적했다. “미국은 어떤 개조를 했고 어떤 사고를 겪었는지 가감 없이 기록한다. 특히 ‘플라이트 팩스(Flight Fax)’ 매거진을 통해 일일이 공개한다. ‘어느 기지 상공에서 조종석 유리창이 깨졌다. 가까운 비행장에 내려 유리를 갈았다. 출발했다.’ 이런 식이다. 마치 김훈 소설가의 문장처럼 팩트를 그대로 보여준다. 연구를 위해 10년 치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모든 사고가 공개돼 있었다. 우리 육군은 물어보면 "그런 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황 박사는 "100% 완벽한 무기체계는 없다. 완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이를 위해 사고를 제대로 알리고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어떻게 개선하는가.
"문제가 발견되면 KHP사업단과 소요군(所要軍),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국과연 등 관련자들이 모여 해결한다. 문제는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불신이다. 문제의 원인 분석과 해결 방안을 내는 국과연과 국방기술품질원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번 조종석 유리 깨짐 현상이 나왔을 때 경찰 조직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이 사안을 가져간 건 상징적이다. 개발 단계에선 미처 챙겨보지 못하는 조건이 있는 것이다. 충격을 받았을 때 유리가 거미줄처럼 금이 갔는데, 조종사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 큰 덩어리로 깨지도록 바꿨다. 깨지지 않는 유리는 없다. 우주선 유리도 깨진다.”
일각에선 수리온을 방산 비리의 핵심처럼 얘기하고, ‘깡통’이라고 얘기한다.
"수리온을 나쁜 비행기냐, 좋은 비행기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하겠나. 나쁘지 않은 비행기다, 좋지 않은 비행기다 하면 선택지가 4개로 늘어난다. 이런 식으로 선택지를 늘리며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100점은 없으니, 90점이냐 95점이냐를 따져야 하는데 늘 나쁘다는 목소리가 압도한다. 수리온을 옹호하면 ‘진영’까지 언급한다. 무기체계 개발에 진영이 어디 있나. 이 사업에 참여했던 방위사업청 사업단, 소요군인 육군과 3개 개발주관기관(한국항공우주산업, 국방과학연구소, 항공우주연구원), 그리고 관련된 2차, 3차 국내외 협력업체의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일하고 있다. 한순간에 욕을 먹고 폄하되는 건 곤란하다.”
 사고로 수리온 수출이 힘들지 않을까.
"수리온은 조종사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완전 전자식 시현장치, 엔진자율조정장치 등 최첨단 장비가 탑재돼 있어 국제시장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아까 얘기했지만 수리온과 마린온을 동일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사고 원인이 기본 모델과 파생형 모델 사이에 공유되는 부분이라면 다르겠지만, 미리 결부시켜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수리온은 미국 알래스카, 미시간, 콜로라도 등 극한 지대 시험도 마쳤다. 중남미 고산 지대의 작전 운용을 염두에 뒀다. 필리핀 등 동남아와 중남미 시장에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
사고 조사위원회에 해외 전문가를 부른다고 한다.
"우리는 하다 하다 나중엔 해외 전문가를 부른다. 불신 때문이다. 이번에 수리온 관련자들은 조사에서 빠지라고 했다. 회전익과 고정익은 상당히 많은 부분이 다르다. 근데 헬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 중에 수리온 사업에 관련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본다. 독보적인 독립성과 전문성으로 사고 원인을 조사해 개선 방안을 내놓는 미국의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같은 기관이 필요하다.”

황 박사는 지난 5월 정년퇴직했다. "채찍을 들 땐 들더라도 최초의 국산 헬기를 개발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는 그는 개발 착수 이후에도 첨단화 등 추가 요구가 더해지면서 개발 시간이 충분치 못한 점도 지적했다. 그는 "바람직한 무기체계 개발을 위해서는 소요제기부터 개발, 그리고 전력화 시기에 이르는 현재의 과정에 과연 개선의 여지는 없는지 군·산·학·연 모든 기관 전문가들이 함께 고민해 볼 때”라고 강조했다.

황정선 박사는 …

2007년 1월 이후 정년 퇴직 때까지 11년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수리온 개발과, UH-60개조 작업, 소형무장헬기(LAH)사업을 맡았다. 공군사관학교 26기. 서울대 기계공학과학·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주리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사 교수 때인 93년부터 헌혈을 100차례 해 적십자사로부터 ‘헌혈유공명예장’을 받았다. ‘좋은 헬기를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퇴직 후에도 헬기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김수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