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빗발친 항의전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아니 저××는 일해재단청문회를 하는 거요, 국제그룹청문회를 하는거요.』
『5공비리를 파헤치기는커녕 은폐시키려는 질문아닙니까.』 8일 오후11시40분쯤 민정당 서정화의원이 양정모 전국제그룹회장을 증인으로 신문을 한지 10여분이 지나서부터 신문사의 야근용 전화 3대가 불이 나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빗발치는「항의전화」.
야근기자들은 1시간 넘게 이리 뛰고·저리 뛰며 곤욕을 치러야했다.
성남·인천·안양은 물론 대전과 멀리 제주로부터 걸려온 전화목소리는 한결같이 「서의원이 청문회의 초점을 흐리고 귀한 시간을 갉아 먹고있다」는데 대한 분노와 성토였다.
그중 다수는 분을 못참아 씨근거리는 목소리로 서씨를 원색적으로 비난했으나 차분한 논리로 꾸짖는 시민도 많았다.
『양회장을 두둔하자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자리는 양씨의 친·인척 족벌경영을 따지는 곳이 아니라 전두환일가의 권력형비리를 밝히는 자리란 말입니다.』
『5공과 단절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민정당으로서 저런 식의 질문은 자신이 「5공의 아들」이라는 점만 확인시켜줄 뿐입니다. 저러다간 민정당까지 설자리가 없어질 겁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유신잔당」이 5공을 망치고 「5공잔당」이 6공을 망치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천하가 다 아는」국제그룹의 해체과정을 양씨의 친·인척 부실 경영탓으로 몰아가려는 듯한 서의원의 유도성 질문에 시민들이 보인 섬뜩하기까지 한 반응은 더이상 「국민과 여론을 외면하는 정치」가 불가능함을 실증하는 느낌이었다.
청문회 생방송이 새벽까지 계속되면서 역시 민정당 신재기의원의 서의원과 유사한「속보이는 질문」과 현저하게 눈에 띄는 의원들의 빈자리에도 시민들의 비난전화가 이어져 야간 당직기자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했다.
밤을새 「정치를 감시」하고 의사를 표시하는 맹렬한 시민정신 앞에서 3류 코미디의 작태가 예사로 벌어지는 현실의 정치가 너무도 한심하게 보인 하룻밤이었다. <전영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