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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침일 바꾸면 전기료 절약?···겨울에 더 토해낼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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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갑자기 전기요금 검침일을 바꾸면 전기요금이 확 줄어든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폭염에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관심이 집중됐다. 실제로 검침일을 변경하면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을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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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보도의 출발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6일 배포한 보도자료다. 핵심은 ‘한국전력이 일방적으로 검침일을 정하는 건 불공정한 약관이며, 이를 심사해 시정하도록 조치했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8월 24일부터 소비자가 한전에 검침일 변경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며 “이에 따라 누진제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8월 24일부터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한전은 이미 2016년 9월부터 고객이 검침일을 택하는 ‘희망검침일’ 제도를 시행 중이다. 3년 동안 51만1640가구가 신청했다. 전기요금을 내는 가구가 2300만 정도니 약 2.2% 정도가 제도를 활용한 셈이다.

한전 관계자는 “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약관에 있든 없든 이미 시행 중인 제도”라며 “국민이 새로 혜택을 보게 된 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에선 ‘전기요금 이슈가 떠오르니 공정위가 숟가락을 얹으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공정위는 해당 보도자료에 ‘검침일만 바뀌었을 뿐인데…전기요금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절약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설명은 이렇다. 현행 주택용 전기요금은 사용량이 많을수록 기본요금과 단위요금이 늘어나는 누진 구조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예컨대 A가구는 보통 월 상반기에 100㎾h, 하반기에 100㎾h의 전기를 쓴다. 그런데 무더위에 에어컨 사용이 늘면서 7월 하반기와 8월 상반기에 사용량이 각각 300㎾h씩으로 증가했다. 만약 이 가구의 검침일이 16일이면 한 달 사용량이 600㎾h에 달해 최고 누진율을 적용하는 3구간에 속하게 된다. 이 경우엔 7월 요금이 13만6040원이다. 하지만 검침일을 1일로 바꾸면 월 사용량이 400㎾h니 3구간에 진입하는 걸 피할 수 있고, 그만큼 요금도 6만5760원으로 낮출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7~8월 합산 요금을 1만8700원(12.4%)가량 절약할 수 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그러나 혜택은 일시적일 뿐 길게 보면 '조삼모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검침일은 한 번 변경하면 1년 안에 재변경이 불가능하다. 7월 하반기 전력 사용이 많아 날짜를 바꿨는데, 12월엔 상반기에 한파가 몰려와 전열 기구를 많이 쓸 수도 있다. 여름에 찔끔 혜택을 봤다가 겨울에 더 토해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전력 사용량은 날씨·온도만의 종속 변수가 아니다. 전기 사용 패턴이나 가구 구성원의 증감 등 여러 변수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휴가를 떠나거나 외출·대외활동이 잦다면 폭염 기간에도 전기료는 적게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한전 관계자는 “소비자가 이런 변수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일 단위로 사용량을 체크하고, 손익을 계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자료 한국전력]

[자료 한국전력]

신청 자체도 간단치 않다. 일단 아파트처럼 단지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엔 모든 가구가 검침일 변경에 동의해야 한다. 별도로 입주자 회의와 주민 투표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또 원격 검침 설비, 즉 전자식 스마트계량기(AMI)가 있어야 변경이 쉬운데 보급 속도가 더디다. 방문 검침을 하는 가구도 신청은 할 수 있지만, 검침원 인력과 운용 예산이 충분치 않다. 아직 제도적으로 정비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희망검침일 제도는 애초에 요금 절감 목적보단 소비자 편의를 위해 도입했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신청 가구 상당수는 요금 절약보다는 카드 결제일 등 지출 패턴에 맞추기 위한 경우가 많다. 한전 관계자는 “당장 요금 부담이 커 걱정이라면 전기요금 분할납부(최대 6개월) 제도를 활용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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