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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억원 주고 산 낡은 어선, 불지르니 보험금 67억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대형 원양어선에 불을 질러 화재보험금 67억원을 타낸 원양업체 대표 등을 구속했다.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대형 원양어선에 불을 질러 화재보험금 67억원을 타낸 원양업체 대표 등을 구속했다.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19억원 주고 매입한 원양어선에 불을 질러 그의 3배가 넘는 67억원의 보험금을 편취한 일당 8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이 챙긴 보험금은 해외에서 발생한 국내 소유의 선박 화재 보험금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조업부진에 남아공 정박 원양어선 방화 #방화범 등 3명 구속, 5명 불구속 입건 #해외선박 화재보험금 중 역대 최대 규모 #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보험금 편취를 목적으로 원양어선에 불을 낸 모 원양업체 대표이사 A(78)씨와 전 계열사 대표 김모(72)씨, A씨의 고향 후배인 이모(60)씨를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8일 밝혔다. 또 경찰은 원양업체 직원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항구에 3년 동안 정박 중인 원양어선에 불을 질러 보험금 67억원을 타낸 혐의(현주선박방화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국내 한 중견 원양업체 대표인 A씨는 2013년 6월쯤 40년 된 4000톤급 규모의 원양어선을 180만 달러(약 19억원)에 매입했다. A씨는 원양어선을 사들인 후 선박의 국적을 바누아투공화국으로 변경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근 지역으로 조업에 나섰다. 하지만 자국 어장 보호 정책과 어황 부진 등으로 매년 6억원의 적자만 발생했다. 결국 A씨는 김씨·이씨 등과 함께 선박에 고의로 불을 내 화재로 둔갑시킨 후 보험금을 타내기로 했다.

A씨는 보험금을 타내 냉동공장을 설립한 뒤 공동운영하거나, 상황에 따라 김씨와 이씨에게 성공 사례비로 보험금의 10%를 주기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화로 불 타버린 원양어선.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방화로 불 타버린 원양어선.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이씨는 2016년 10월 경 A씨와 김씨의 지시로 남아프리카로 가 원양어선에 승선해 10일 동안 선박구조를 파악하는 등 범행을 준비했다. 이씨는 불이 난 시각에 자신이 현장에 없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치밀함도 보였다. 양초 3개를 한 묶음으로 만들고 주변에 인화성 물질을 뿌려 양초가 다 타들어간 5시간 후 불이 나게 한 것이다.

경찰은 국내 보험사가 해당 화재사건의 의심스러운 부분을 발견했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보험금을 지급한 후 관련 내용을 수사 의뢰해 수사에 착수했고, 이들 일당을 붙잡았다.

현재 국내 해상보험계약 기준은 영국법을 따르는데, 사고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보험사가 입증하게 돼 있다. 만약 보험사가 확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 선박의 국적이 바누아투고, 사건 발생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기 사건 사고 사실을 국내 수사기관에 통보할 의무가 없다.

경찰관계자는 “해외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국내 수사기관이 현장에서 수사할 권한이 보장되지 않아 보험사기를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직접 수사가 어렵더라도 우리나라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일 경우 수사기관에 통보하는 등의 조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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