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주인의식 일깨운 청문회 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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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MBC TV는 지난 4일밤 국회5공특위(위원장이기택)의 일해재단청문회를 1백분간에 걸쳐 녹화중계했다.
의정사상 처음 열린 청문회인 만큼 생중계를 안한데 대한 아쉬움이 남지만 일단 중계를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했다.
그것은 엄연한 국가의 주인이면서도 국정의 논의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어온 국민들로 하여금 초미의 관심사인 5공 비리규명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 감시하도록 함으로써 모처럼 주인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5공비리의 궁극적인 피해자는 다수국민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린다면 중계방송은 그 동안 탈정치화되었던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일깨우는 중요한 자극제 구실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뭏든 국가적인 중대결정이 이뤄지고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터지는 동안 스포츠중계나 오락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방영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던 지금까지의 관행에 비춰보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녹화중계는 긴장감이 감도는 현장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활자매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상매체만의 특성을 유감없이 살려냈다.
무엇보다도 의원의 발언이 핵심내용에 이를 때까지의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보여준 것은 바람직했다.
이날 중계방송은 시청자 스스로가 청문회 참가자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도록, 하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증인들은 한결같이 핵심에서 벗어난 동문서답식 답변으로 시간을 끌었고 어떤 증인은 황당무계한 궤변을 늘어놓다가 끝내 위법사실을 시인하기도 했다.
또 여당의원들은 사실규명보다는 해명과 변명에 초점을 맞춘 유도성 질문을 던졌고 무의미한 질문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일부 야당의원들도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마치 증인들을 피의자 다루듯 몰아세웠으며 어느 의원은 진지하지 못한 만담조의 수준 낮은 질문을 연발했다.
이 같은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공개됨으로써 국민들은 자신들을 지배해온 정치권력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재평가할 수 있게 됐다.
밀실속에서 이뤄진 어떠한 부정과 담합·음모도 언젠가는 TV화면을 통해서 역사와 국민 앞에 철저히 발가벗겨진다는 교훈도 이번 중계방송의 소득이다. < 이하경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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