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에 천문대 '별밤' 피서 인기...3주 전 예약 마감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별마로천문대에서 내려다 본 영원군 시내와 소백산 자락의 모습. 해발 800m에 위치해 있어 해가 지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피서지로 인기다. 강기헌 기자

별마로천문대에서 내려다 본 영원군 시내와 소백산 자락의 모습. 해발 800m에 위치해 있어 해가 지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피서지로 인기다. 강기헌 기자

지난 1일 밤 8시. 강원 영월군 영월읍 봉래산 정상에 위치한 별마로천문대 천체투영실. 61석의 의자는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김완수 별마로천문대 사원이 묻자 관람객들 사이에서 다양한 대답이 들렸다.
“달이요.”
“해요.”
“목성 아닌가요.”
한참 뜸을 들이던 김 사원은 “정답은 지구에서 1억5000만 킬로미터 떨어진 가장 가까운 천체 태양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까운 것 같지만, 여러분이 타고 오신 자동차로 시속 100㎞로 달리면 170년 이상이 걸리는 거리에요”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천문대 관측 프로그램은 지름 8.3m 크기의 돔 스크린이 마련된 천체투영실에서 시작된다. 특수 장비를 활용해 천장에 마련된 돔 스크린에 가상의 별을 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날씨와 상관없이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별마로천문대 천체투영실은 3500여개의 별을 표현할 수 있다. 천체투영실에서 북극성과 별자리를 찾는 법을 익힌 다음 실제 관측에 나선다.

별마로천문대의 천체투영실 내부. 돔 형태의 천장에 별자리를 재현한다. 실내에 마련돼 있어 날씨에 관계없이 별자리를 볼 수 있다. [사진 별마로천문대]

별마로천문대의 천체투영실 내부. 돔 형태의 천장에 별자리를 재현한다. 실내에 마련돼 있어 날씨에 관계없이 별자리를 볼 수 있다. [사진 별마로천문대]

불이 꺼지자 완전한 암흑이 찾아왔다. 내 손조차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이었다. 별자리인 큰곰자리를 활용해 북극성을 찾는 것으로 별자리 관측이 시작됐다.
“북극성 확인하셨나요.”
“네.”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지만,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 등 빛 공해 때문에 도시에선 이렇게 많은 별을 보기 힘들어요.”
백조자리와 거문고자리 등 여름철 별자리에 얽힌 신화에 대한 설명이 20분 가까이 이어졌다.

별마로천문대 전경. 거대한 돔 형태의 주관측실(오른쪽)과 슬라이딩 돔 형태의 보조관측실(왼쪽)이 보인다. [사진 별마로천문대]

별마로천문대 전경. 거대한 돔 형태의 주관측실(오른쪽)과 슬라이딩 돔 형태의 보조관측실(왼쪽)이 보인다. [사진 별마로천문대]

14m 돔 열리자 산바람 불어와

본격적인 관측은 계단을 따라 올라간 천문대 4층에서 진행됐다. 4인용 식탁 길이와 비슷한 천체망원경 4대가 보였다. 서진아 별마로천문대 대리가 스위치를 누르자 14m 길이의 보조관측실 천장 슬라이딩 돔이 좌-우로 열렸다. 동강에서 올라온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혔다. 까만 하늘 사이로 별이 보였다.

별마로천문대의 주관측실. 800mm 천체망원경이 설치됐다. [사진 별마로천문대]

별마로천문대의 주관측실. 800mm 천체망원경이 설치됐다. [사진 별마로천문대]

북극성을 찾는 것에서 본격적인 별자리 탐색이 시작됐다. 천체투영실에서배운 대로 큰곰자리를 활용하니 어렵지 않게 북극성을 찾을 수 있었다. 대구에서 부모님과 함께 피서를 왔다는 초등학교 3학년 김철민군은 “국자 머리에서 5배 이은 곳에서 북극성을 찾을 수 있다는 설명대로 찾았다”고 말했다.
“이쪽에 있다.”
“저쪽 좀 봐라.”
다양한 목소리가 깜깜한 밤하늘을 덮었다. 별자리를 찾은 순간을 남기려 했지만, 휴대전화 등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았다. 서진아 대리는 “천체망원경은 작은 불빛에도 민감해 관측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사진이 아닌 마음속에 담아가 달라”고 말했다.

별마로천문대에서 촬영한 토성의 모습. 천문대 관측 프로그램을 통해 천체망원경으로 볼 수 있다. [사진 별마로천문대]

별마로천문대에서 촬영한 토성의 모습. 천문대 관측 프로그램을 통해 천체망원경으로 볼 수 있다. [사진 별마로천문대]

북극성을 찾은 다음엔 여름철 별자리를 대표하는 대 삼각형(알타이르-베가-데네브) 별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어 천체망원경 5대를 활용해 화성ㆍ목성ㆍ토성 등을 관측했다. 천문대 주관측실에 있는 800㎜ 반사망원경 접안렌즈에 눈을 대자 목성이 보였다. 이곳에 있는 천체망원경 중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것이었지만 렌즈에 비친 목성은 강낭콩 크기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목성을 상징하는 표면 주름은 확연했다. 서진아 대리는 “별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히 보이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백조자리에 위치한 알비오레 쌍성이었다. 맨눈으로 보기엔 하나의 별로 보였지만 천체망원경을 통해서 보자 푸른색과 주황색 별이 각각 빛나고 있었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가족과 함께 온 최창주(45)씨는 "에어컨 없이도 산바람만으로도 상쾌한 느낌"이라며 "별 보느라 더위도 잊었다"고 말했다.

여름 시즌엔 2~3주 전부터 매진

역대 최대 폭염으로 열대야를 피해 천문대를 찾는 관람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달 초 대전시민천문대에서 시민들이 천체 관측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대전시민천문대]

역대 최대 폭염으로 열대야를 피해 천문대를 찾는 관람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달 초 대전시민천문대에서 시민들이 천체 관측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대전시민천문대]

별마로천문대를 비롯해 전국 천문대는 열대야를 피해 찾아온 피서객들로 불야성이다. 별마로천문대의 경우 밤 8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된 7개 팀(팀당 61명)의 천체 관측 회는 이날 모두 매진이었다. 주차장은 밤 10시까지도 몰려온 차들로 가득했다. 김완수 사원은 “여름 시즌은 2~3주 전부터 예약이 찬다”며 “강원도로 피서를 오셨다가 당일 관람을 원하는 문의 전화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름 천문대는 새로운 피서지가 주목받고 있다. 우선 시원하다. 해발 800고지에 위치한 별마로천문대는 영월군 시내보다 기온이 3~4도 낮다.

역대 최대 폭염에 다른 천문대도 관람객들이 줄을 잇는다. 대전 시민천문대는 8월 개장 이틀 만에 관람객이 5000명을 넘어섰다. 최형빈한국천문우주과학협회장(대전시민천문대장)은 “개관 17년을 맞았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라며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2016년에도 방문자가 많았는데 올해는 그때보다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천문우주과학관협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58개 기관이 천제 관측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26곳은 별마로천문대(영월군시설관리공단 운영)와 같은 형태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국공립 시설의 경우 천체 관측 프로그램이 성인 기준 1만원 이하로 저렴한 편이다.

영월=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전국 천체 관측 시설을 표시한 지도. [자료=한국천문우주과학관협회]

전국 천체 관측 시설을 표시한 지도. [자료=한국천문우주과학관협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