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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범죄 가중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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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병원 응급실 의료진의 수난시대다. 의사나 간호사가 환자에게 얻어맞는 폭행 사건이 지난달에만 3건이다. 공통점은 가해자가 모두 ‘주취자’란 거다. 그런데 처벌은 솜방망이다. 지난달 31일 전공의를 폭행해 동맥이 파열되는 상해를 입힌 주취자도 이튿날 풀려났다. ‘술 탓’ 운운하며 책임을 모면하려는 범죄자들의 단골 핑계가 일부 작용했을 듯싶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뻔한 발뺌 말이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괜찮은 사람이야”란 말이 주변에 흔하다. “술 취해 그럴 수도 있지”란 표현의 다른 버전이다. 술에 관대하다 못해 술이 면죄부다. 주취범죄가 도를 넘는 까닭이다. 검경의 통계를 보면 살인범의 45.3%, 강간범의 34%, 공무집행방해 사범의 74.4%가 주취자다. 요즘 이슈가 된 응급의료 방해 행위의 68%도 음주 상태에서 벌어진다.

술범죄에 보다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올 들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술범죄 관련 청원만 70건이 넘는다. 주취감경(酒醉減輕) 제도 폐지를 넘어 외려 ‘가중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범죄를 저지르려면 술부터 마시고 저지르라’는 말이 나오는 우리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는 개탄과 함께다.

급기야 엊그제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면 두 배까지 가중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주취감경을 규정한 형법 제10조를 손질한 것이다. 경각심을 높여 술범죄를 줄이자는 취지다. 법조계 반응은 신중하다. ‘책임이 없으면 형벌이 없다’는 책임주의가 형사법의 대원칙이란 이유에서다. 요컨대 술에 취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겐 법적 책임을 면제 또는 감경하는 게 형벌 체계의 골격인 만큼 함부로 흔들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청원에 비친 국민감정은 다르다. 주취범죄자에게 책임이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란다. “술을 마시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건데 왜 심신미약이 적용돼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본인 의지로 심신미약 상태가 된 경우에는 해당 범죄에 대한 책임이 더 크니 가중처벌이 마땅하다.” 술 조절 못 한 죄는 결국 자기 책임이란 얘기다.

낡은 법리해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독일·프랑스 등 외국에선 음주범죄 가중처벌이 일반적이다. 우리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그리되면 술 탓에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내뱉는 발뺌이 달라질 게다. ‘기억 안 난다’에서 ‘술 안 마셨다’로 말이다. 술 뒤로 숨는 범죄자가 줄어들 수 있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