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로 안내···" 93명 숨진 그리스 산불, 경찰 대형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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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그리스 산불 당시 탈출하는 주민들 [AP, AFP=연합뉴스]

지난달 23일 그리스 산불 당시 탈출하는 주민들 [AP, AFP=연합뉴스]

최악의 산불이 발생해 93명이 숨진 그리스 당국이 화재 당시 주민 대피 과정에서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1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아테네 북동부 해안도시 마티 일대에 산불이 일어났을 당시 경찰들은 주민을 탈출로가 아닌 불길 쪽으로 우회시켰던 것으로 조사됐다.

화염이 번지는 위급한 상황에 주요 대로로 차량이 되돌아가도록 해야 했지만, 오히려 불길이 번진 쪽으로 안내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실제 현지 경찰과 재난 주무부처인 시민 보호청이 산불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안내한 대피 경로는 산불이 번지는 방향이었다. 주민들은 산불이 나는 쪽으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당국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던 상당수 주민이 화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바실리스 디갈라키스 크레타기술대학 교수는 "불타버린 차량 305대의 사진들을 보면, 희생자들이 모든 방향에서 탈출로를 찾지 못한 채 가로막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갈라키스 교수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교통을 차단하고 운전자들을 유턴시켜야 했지만, 마티를 관통하는 우회로를 택하도록 허용했다.

마티는 이번 산불 피해가 집중된 곳으로 상당수 희생자가 차량에 갇히거나 차량을 버리고 바다 쪽으로 대피하다가 화염에 휩싸여 목숨을 잃었다.

아테네대학 조사단도 마티 지역에서 당국의 주민 대피 노력이 조직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교통 체증과 공포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산불 당시 해안 인근 주민과 관광객에 경보가 전달되지 않아, 대피할 시간이 부족해 인명 피해를 늘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산불은 최대 시속 120㎞의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마티의 주요 도로에서 해안까지 불길이 번지는 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 밖에도 좁은 길, 막다른 골목, 불법 건축물 등 마티의 조악한 도시 계획이 탈출로를 막는 요인이 됐다고 아테네대학 조사단은 덧붙였다.

기오르고스 스타타키스 그리스 환경부장관 역시 기자회견을 통해 아테네가 포함된 아티카 일대 산림과 해안가에 각각 2500채, 700채의 불법 건축물이 존재한다며 불법 건축물이 인명 피해를 키운 요인이었음을 인정했다.

당국의 미숙한 조치가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자 유족들은 소방당국, 경찰, 시민 보호청, 지방정부 등을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고소하며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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