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문 대통령의 저녁식사와 민주당 전당대회의 향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저녁을 누구랑 먹을까. (1) 혼밥을 먹거나 (2) 가족(김정숙 여사)과 먹거나 (3) 임종석 비서실장과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선 대통령 천성이 워낙 워커홀릭이라 산처럼 쌓인 보고서를 읽으며 밥을 먹기 일쑤니 혼밥인 경우가 많다. 또 여러 사람과 거나하게 먹는 스타일이 아니여서 가족이나 측근하고만 소략하게 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 측근이 임 실장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여권 고위 소식통 전언이다.

대통령, 2년 뒤 총선 역대급 공천 물갈이 원해 #후보들, 총선 불출마 등 ‘사심 없음’ 입증해야

문 대통령이 임 실장과 함께 먹을 때는 식사 뒤 가볍게 술 한잔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불려 오는 사람이 이낙연 총리라고 한다. 보통 임 실장이 전화로 “일정 없으시면 청와대로 오시라”는 대통령의 전갈을 보낸다고 한다. 이 총리는 매주 한차례씩 대통령과 밥을 먹으며 독대하는데 그 외에도 이런 술자리에서 대통령과 대화할 기회를 따로 갖는 셈이다.

여권 소식통에 따르면 요즘 문 대통령의 핵심 관심사 중 하나가 협치다. 집권 1년2개월이 된 지금까지는 북핵과 적폐청산에 묶여 협치를 신경 쓸 수 없었으나 이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소된 지금은 야권과 연정, 아니 합당에 준하는 강도 높은 협치를 통해 문재인표 개혁 입법을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총리의 권한을 넓히고 장관 인사권 지분도 주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야당에도 장관 자리를 주고 입법에서 도움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우선 뿌리가 같은 민주평화당에 통일부 장관 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민평당에선 박지원 의원, 정부와 여당에선 임 실장과 우원식 의원(전 민주당 원내대표)이 교섭을 하고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이런 상황인 만큼 23일 뒤 취임할 새 여당 대표도 ‘협치’를 무난하게 뒷받침할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것이 청와대 기류라고 보면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가 이해찬 의원의 대표직 도전에 떨떠름한 표정을 보이는 건 자연스럽다. 이해찬과 문 대통령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있다. 2년 전 20대 총선을 앞두고 긴급 투입된 김종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친문패권주의’ 청산을 위해 친노·친문 의원 상당수를 낙천시켰다. 그런데 그 직전 ‘공천 배제 예정자 명단’을 입수한 문재인 전 대표(당시)는 비대위에 “전해철만은 빼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전해철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문재인은 역시 데스노트에 올라있던 이해찬에 대해선 말이 없었다.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이다. 이 사실을 이해찬도 알고 섭섭해했지만 낙천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당시 비대위에 관여했던 또다른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표는 당시 비대위 측에 '근거 없이 (이해찬을 포함한 낙천 대상자들을) 컷오프하면 안된다'고 했다. 또 이해찬은 문 전 대표 아닌 김종인에게 섭섭해했다"고 말했다) 이해찬은 굴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세종시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5개월 만에 어렵사리 복당했다. 이렇게 낙천→무소속 출마→복당의 홍역을 거친 이해찬이 당 대표가 되면 문 대통령과 당내 주류인 친문 직계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해찬이 출마를 발표하기 전날 밤,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이었던 친문계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해찬에 전화를 걸어 출마를 만류한 것에서부터 친문들의 부담스런 기류가 묻어난다. 요즘 전해철과 황희 등 친문 핵심 의원들은 이해찬의 대항마인 김진표 의원을 대놓고 밀고 있다. 특히 권리당원이 전국에서 3번째로 많은 경기(14만명, 20%) 지역 당 조직을 쥐락펴락하는 전해철의 지원이 두드러진다. 김진표가 대표가 되면 전해철은 당 사무총장에 올라 21대 총선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설이 파다한 이유다.

물론 이해찬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현 정권 뿌리인 ‘원조 친노’ 세력이 이해찬 배후에 있다. 66세, 7선 경력에 총리까지 지낸 지명도도 압도적이다. 특히 “이번 당 대표 출마가 마지막 정치적 소임”이라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시사한 건 신의 한 수다. 여권 고위 소식통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다음 총선에서 친노, 586 등 민주당을 지배해온 기득권 세력을 확실히 물갈이하길 원한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자유한국당이 다음 총선을 앞두고 ‘학살’ 수준의 공천 물갈이를 단행해 승리를 노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려면 민주당도 역대급 공천 물갈이를 해야 하는데 그 경우 1순위 대상이 이해찬과 김진표가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표가 되겠다니 청와대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걸 간파한 이해찬이 불출마 카드로 뒤집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해찬의 선제조치는 김진표와 송영길에게도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김진표는 세 후보 중 최고령(71)이란 점, 송영길은 차기 대권에 도전하려는 의지를 품은 점이 각각 청와대에 부담이다. 두 후보는 이를 의식해 차기 총선 불출마와 ‘혁명적 수준의 공천 개혁’ 열차에 동승할 공산이 크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1년 8개월 뒤 총선은 물론이고 진보와 보수 진영의 운명이 걸린 2022년 대선 레이스에 시동이 걸렸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물밑의 큰 흐름은 대통령과 비서실장, 총리가 모인 청와대 저녁 자리에서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정치권 관측이 많다. 그래서 모두 눈은 여의도를 보고 있지만 귀는 청와대를 향해 세워져 있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