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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반복되는 ‘성 혐오’ 커뮤니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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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종훈 복지팀 기자

정종훈 복지팀 기자

“김치녀는 삼일한이 답” “모든 건 다 한남충 때문”

지난해 4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이 온라인 커뮤니티 16곳의 게시글·댓글을 모니터링했더니 나온 표현이다. 김치녀는 김치를 먹는 한국 여성, 삼일한은 3일에 한 번 때려야 한다는 의미다. 한남은 한국 남성의 줄임말로 보통 벌레를 뜻하는 ‘충’과 같이 쓰인다. 당시 양평원은 “특정 성에 대한 혐오·비난, 폭력·성적 대상화 표현이 많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까. 양평원이 지난 6월 온라인 커뮤니티 8곳의 게시글과 댓글을 모니터링했다. 1년 2개월이 지났지만 똑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31일 공개된 양평원 자료에 따르면 “교통사고 당해도 통통 튈 거 같이 살쪘던데”나 “길거리에 돼지X들을 보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극단적 표현이 쏟아졌다. ‘좋은 아내 진단표’를 만들어 부인을 남편의 성적 도구이자 복종해야 할 존재로 표현하기도 했다. 양평원 관계자는 “일부 글만 샘플로 조사한 결과라서 실제는 훨씬 심할 것이다. 보도자료에 담을 수 없는 표현도 많다”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극단적이거나 좀 더 혐오스러운 표현이 많이 나와서 걱정”이라고 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우리 사회 한쪽에선 성차별적 구태를 벗어나자는 ‘미투’ 운동이 이어진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특정 성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와 폭력이 자란다. 온라인 세상은 그 분출구 역할을 한다. ‘워마드’ ‘일베’처럼 회원 가입을 거치는 곳뿐 아니라 ‘유튜브’ ‘네이트판’ 같은 공개 플랫폼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이 넘친다.

일부 사이트에선 여혐·남혐 게시물을 원천 금지한다는 공지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자정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되레 성체 훼손, 몰카 유출 같은 갈등과 논란만 키운다. 5살 딸을 둔 김모(33)씨는 “아이가 스마트폰을 갖고 노는데 이상한 글이나 사진을 보지 않을까 늘 신경 쓰인다”고 했다.

정부와 온라인 업계가 분초 단위로 쏟아지는 모든 글을 모니터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글을 전면 차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성차별적 언어와 혐오 문화는 일상까지 좀 먹고 있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이 지난해 중학생 700명에게 여성·남성 비하 표현이나 ‘패드립(패륜적인 말)’을 사용해봤느냐고 물었더니 39.6%가 “그렇다”고 답했다. 더는 대책 없이 방치할 때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성 혐오’ 커뮤니티를 개선할 대안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종훈 복지팀 기자